항목 ID | GC052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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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麟燮 |
이칭/별칭 | 원지(元趾)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개항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지(元趾). 증조할아버지는 오계조(吳啓兆)이고, 할아버지는 오시익(吳始益)이다. 생부는 오점근(吳點根)이고, 생모는 권희준(權希俊)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 양부는 오덕근(吳德根)이고, 양모는 김인술(金仁述)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부인은 이한성(李漢星)의 딸 숙부인(淑夫人)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고, 후처는 김재현(金在鉉)의 딸 숙부인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다.
[활동 사항]
오인섭(吳麟燮)[1844~1918]은 1844년(헌종 10) 경상도 의성현에서 출생하였다. 1880년(고종 17) 수신 정사 김홍집(金弘集)을 수행하여, 백의종사(白衣從事)로 일본에 다녀왔다. 1883년에는 문의관(問議官) 이조연(李祖淵)을 수행하여 청나라를 다녀왔다.
귀국 후 용양위 부사용 기계국 사사(龍驤衛 副司勇 機械局 司事)를 역임하였다. 1884년에 6품 벼슬에 올라 친군 좌영군 사마(親軍 左營軍 司馬)를 지내고, 1884년 10월 갑신정변이 일어난 이후에는 적성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885년에는 함안 군수로 있다가 아버지 상을 당하였는데, 애훼(哀毁)가 지극했다고 한다. 1885년에 진위 군수(振威 郡守)가 되었고, 1896년(고종 23)에 신녕 군수(新寧 郡守)를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백의 종사로 일본에 다녀와 『승사록(乘槎錄)』을 저술하였고, 청나라를 다녀와 『연행록(燕行錄)』을 저술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사두래곡에 있다.
[상훈과 추모]
수령으로 부임했던 경상남도 함안군과 신녕[현 경상북도 영천시]에 송덕비(頌德碑)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