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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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安李氏 |
영어공식명칭 | Yeonan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감병훈 |
본관 | 연안 - 황해도 연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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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장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학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명천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봉정리 |
성씨 시조 | 이무 |
입향 시조 | 이성실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이무(李茂)를 시조로 하고 이성실(李成實)[1603~1656]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연원]
연안 이씨(延安李氏)의 시조는 이무로 그는 당나라 사람이었는데, 본디 국성(國姓)이었던 농서 이씨(隴西李氏)였다. 660년(태종무열왕 7) 소정방(蘇定方)[592~667]의 부장(副將)으로 백제와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여 세운 공으로 시염성(鼓鹽城)[현 황해도 연안군]의 식읍 1,000호를 받고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져 이후 후손들이 연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 경위]
성주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연안 이씨는 부사공파(副使公派)의 후손들인데, 특히 6세손인 이숭원(李崇元)[1428~1491]은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한 이후 평안도관찰사·형조 및 병조 판서를 두루 거친 후 청백리에 녹선(錄選)되고 충간(忠簡)의 시호를 받았다. 그의 차자인 이구령(李九齡)이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금릉군(金陵郡)[현 경상북도 김천시]에 이거했고, 그의 6세손인 이성실이 성주군 월항면 장산리 백자촌(柏子村)으로 이주하면서 연안 이씨의 입향조가 되었다. 이성실의 둘째 손자였던 이시적(李蓍迪)이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로 이거한 이후 약 260년간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현황]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학산리·금수면 명천리·초전면 봉정리 등지에 133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에 이성실의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사용당(四慵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