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 감응사(感應寺)의 창건 설화는 다음과 같다. 애장왕(哀莊王)[788~809]이 늘그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왕자는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왕비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인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
-
조선 후기 성주 지역에서 노강서원의 설립을 두고 벌어진 논란. 노강서원 설립 논란은 18세기 전반 남인 세력이 강했던 영남에서 노론계 서원인 노강서원의 설립 추진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다.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서인이 남인의 근거지였던 영남에서 서인 계열의 노론 세력 확산을 위해 노론계 서원을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702년(숙종 28) 노론계 인물인 이지완(李志完)[166...
-
조선 후기와 개항기 성주 출신의 성리학자. 본관은 성주. 자는 하응(河應), 호는 괴아(槐啞). 도응(都膺)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도석엽(都錫曄)이고, 어머니는 장씨(張氏)와 고씨(高氏)이다. 부인은 이씨(李氏)로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
성주 지역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씨. 삼국 시대 때 성씨는 왕족과 귀족만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특권이었다. 후삼국 시기를 거치면서 호족이나 고려의 개국 공신들이 성씨를 사용했고, 시조(始祖)의 출신지나 거주지를 본관(本貫)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시대를 지나면서 성씨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특권이 차츰 사라졌고, 조선 시대에는 일반 백성들까지...
-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18세 소년 도세순이 임진왜란의 피란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 도세순(都世純)[1574~1653]의 『용사일기(龍蛇日記)』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의 18세 소년 도세순이 임진왜란의 피란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이다. 임진왜란 피란 과정을 기록한 여러 편의 용사일기 중 도세순의 『용사일기: 용사난중일기』는 일반인 특히 18세 소년의...
-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덕산(德山)[충청남도 예산군]. 자는 사빈(士彬), 호는 지주헌(砥柱軒).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이형(李衡)이고, 어머니는 황씨(黃氏)·이씨(李氏)이다. 아들은 이윤원(李允元)이다....
-
성주 지역으로 이거한 고려 후기 문신이자 경산 이씨 시조. 이덕부(李德富)는 경산 이씨(京山李氏) 시조이며, 생몰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경산(京山)은 현 경상북도 성주군의 옛 이름 경산부(京山府)를 가리킨다. 고려 시대에 무신의 난을 일으킨 정중부(鄭仲夫)[1106~1179]와 이의방(李義方)[?~1174] 등에 반대하여 경산부로 이주하면서 경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성주에는...
-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동하였다고 전해지는 성주 이씨 시조. 이순유(李純由)는 성주 이씨(星州李氏) 시조이다. 성주 이씨 족보인 『성주이씨문열공파세보(星州李氏文烈公派世譜)』는 1464년 것을 기본으로 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성주이씨문열공파세보』에 의하면 이순유가 신라 말에 벼슬을 하였으나 고려 개국에는 참여하지 않고 경산[현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들어와 살게 됨으로써 성주를...
-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7일~3월 28일 양일간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동에서 30여 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고, 3월 28일 성주읍 장터에서 단독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
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충절, 효자, 열녀, 덕행으로 알려진 인물. 충효열(忠孝烈)이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녀자가 지조를 지켜 남편을 따라 순절하는 행실을 통칭한 말이다. 충효열을 삼강오륜(三綱五倫) 중에 삼강(三綱)이라고 하였으며, 유교 이념의 기본 덕목이다. 즉 삼강이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군위신강(君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