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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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韓氏 |
영어공식명칭 | Cheongju Ha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기범 |
본관 | 청주 - 충청북도 청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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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 관동마을 |
성씨 시조 | 한란 |
입향 시조 | 한만손 |
[정의]
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만손(韓萬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청주 한씨(淸州韓氏)의 기원에 대해 『청주한씨세보(淸州韓氏世譜)』에서는 기자의 후손 우량(友諒)에서 연원을 찾고 있으나, 사실 여부를 검증할 방법은 없다. 족보 등에 의하면, 청주 한씨의 시조인 한란은 928년(태조 11)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량을 보태고 종군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공을 인정받아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 되고, 삼중대광(三重大匡) 태위(太尉)에 올랐다고 한다. 한란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에서 태어났는데, 40세 무렵에 지금의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으로 이거하였다고 전하며, 이후 자손들이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거하게 되었다.
[입향 경위]
청주 한씨의 성주 지역 입향조 한만손[?~1503]은 13세 한서룡(韓瑞龍)의 다섯째 아들로, 절도공파(節度公派) 파조이다. 한서룡은 조선 성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피해 경기도 양주군에서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리로 이거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벽진면 가암리 관동 마을에 터를 잡아 세거하였다.
[현황]
청주 한씨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총 417명이 성주군에 거주 중이다.
[관련 유적]
청주 한씨 관련 유적 중 성주 지역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경모재(敬慕齋)가 있다. 한만손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