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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419
한자 東萊鄭氏
영어공식명칭 Dongnae J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동래 - 부산광역시 동래구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운산리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계정리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문명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유서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명포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흥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성씨 시조 정회문
입향 시조 정숙|정하공|정성교|정수열|정담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전서공파(典書公派) 6세손 정숙(鄭淑), 동평군파(東平君派) 8세손 정하공(鄭河羾)·10세손 정성교(鄭星僑)·11세손 정수열(鄭修烈), 참판공파(參判公派) 12세손 정담(鄭淡)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연원]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본래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32년(유리이사금 9)에 지백호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되어 경주를 본관으로 삼다가 훗날 동래로 분가(分家)하였다고 한다. 시조 정회문은 본래 동래의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으나 자세한 계보가 실전되었다. 대신 그의 자손인 정지원(鄭之遠)이 동래의 보윤호장(甫尹戶長)을 지냈기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본관을 동래로 하였다.

[입향 경위]

11세손 정양생(鄭良生)[?~1392]의 4형제가 각 파를 이루어 분파조가 되었다. 장남 정규(鄭規)는 전서공파이고 차남 정구(鄭矩)[1350~1418]가 설학재공파(雪壑齋公派)를 이루고 그의 증손 정종(鄭種)[1417~1476]이 이징옥(李澄玉)[?~1453]의 난과 이시애(李施愛)[?~1467]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동평군에 봉군되어 파를 형성했다. 사남 정절(鄭節)은 참판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성주군에 정착한 동래 정씨는 이들 3파의 후손들이다. 전서공파 6세손 정숙은 1740년(영조 16)에 벽진면 자산리로 이주하였고, 동평군파 7세손 정원규의 자손들은 1763년(영조 39) 선남면 소학리선원리에 이거했다. 8세손 정하공이 1687년(숙종 13) 용암면 운산리로 이거했고, 9세손 정영복의 자손들은 1763년(영조 39) 선남면 유서리명포리로 이주했다. 10세손 정성교가 1761년(영조 37) 선남면 소학리로 이거하고, 정유강의 자손들은 1770년(영조 46) 선남면 도흥리로 이주했다. 11세손 정수열이 1720년(숙종 46) 수륜면 계정리로 이주했다. 참판공파 12세손 정담은 1800년(정조 24) 용암면 문명리로 이거했고, 8세손 정활(鄭活)의 자손들은 수륜면 수성리에 이주했다.

[현황]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선남면 소학리·유서리·도흥리, 용암면 운산리, 수륜면 수성리 등지에 1,014명이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운산리에 정서(鄭恕)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로 귀연재(龜淵齋)가 있다. 문명리에는 정우(鄭堣)[1609~1687]의 학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만성재(晩惺齋)가 있으며, 사곡리에는 정횡(鄭鈜)[1575~1637]의 재사인 풍곡재(楓谷齋)가 있다. 선남면 명포리에 정선국(鄭善國)[1740~?]을 기리고자 세운 청송재(聽松齋)가 있고, 벽진면 자산리에는 정세로(鄭世老)[1549~?]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귀후당(歸厚堂)이 있다.

[참고문헌]
  • 『성주군지』(성주군, 1996)
  • 『성주군지』(성주군·성주문화원, 2012)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https://kosi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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