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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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朴氏 |
영어공식명칭 | Miryang Park Clan |
이칭/별칭 | 밀성 박씨(密城朴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식 |
본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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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봉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
성씨 시조 | 박언침 |
입향 시조 | 박덕순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박언침(朴彦忱)을 시조,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
[개설]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시조 박언침은 신라 시조 혁거세로부터 29세손인 경명왕의 장자로 밀성대군(密城大君)의 봉함을 받아 관향이 유래하였다. 밀양 영남루(嶺南樓)에 밀성대군을 향사하는 단소(壇所)와 밀성재(密城齋)가 있고 밀성 박씨(密城朴氏)를 지금은 밀양 박씨로 부른다.
[연원]
밀양 박씨는 신라 54대 경명왕의 장자 밀성대군 박언침을 시조로 한다. 그의 7세손 태사공(太師公) 박언부(朴彦孚)와 함께 5대에 걸쳐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고, 누대에 걸쳐 높은 벼슬이 끊어지지 않았다. 밀양 박씨는 자손이 흥성하여 수많은 파가 있으나 대개 12파로 크게 나누고 그 아래에서 다시 여러 파로 분파하였다.
[입향 경위]
박언침의 15세손 박승백(朴承伯)은 중종 때 순천교수와 경상도순무어사를 지냈는데 기묘사화에 화를 입자, 그의 어린 아들 박덕순(朴德純)이 진주에서 성주 윤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으로 피신하여 은거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후손들은 성주 일원에 산거하고 있다.
[현황]
박언침의 17세손 박효봉(朴孝鳳)이 선산군 양산에서 초전의 용봉으로 이거하여 그 자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박언침의 후예인 박유현(朴有賢)이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아들을 데리고 성주 거곡으로 피난한 이후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22세손 박문업(朴文業)은 벽진 가수촌의 입향조이며, 그 후손들이 성주 일원에 산거한다. 한편 박춘(朴椿)은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密直副使) 좌상(左相)을 지냈는데, 그의 13세손 박규망(朴圭望)은 구례에서 성주 갈전에 입향하여 후손들이 산거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성주군에는 54명의 밀성 박씨, 2,156명의 밀양 박씨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못둑 마을의 중앙에 위치하는 한산재(寒山齋)는 이조참판에 증직된 박유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970년에 세운 재사이다. 수륜면 수륜리 토실 마을 안쪽에 남향하여 위치한 경모재(景慕齋)는 박덕순의 유업과 아들 박찬(朴澯)과 손자 박명윤(朴明胤), 증손 박진구(朴震耈) 등의 깊은 문망(文望)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대가면 금산2리 웃상삼 마을 입구에 위치한 경성재(景省齋)는 입향조인 박윤연(朴潤連)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1949년에 후손들이 세운 재실이다. 수륜면 남은2리에 있는 박재영 표효비(朴在榮表孝碑)는 밀양 박씨 문중의 박재영[1851~191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비이다. 월항면 대산리의 한개 마을 밖 영취산 동쪽 자락에 있는 열녀 박씨 정려문(烈女朴氏旌閭門)은 영조 때 인물로 통덕랑 이민성(李敏省)의 부인 밀양 박씨의 열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