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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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 |
영어공식명칭 | Kimhae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지국 |
본관 | 김해 - 경상남도 김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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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마수리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송계리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흥리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계리 |
입향지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대흥리 |
성씨 시조 | 김수로 |
입향 시조 | 김성필|김대생|김정남|김풍림|김입경|김춘인|김만증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김수로(金首露)를 시조로 하는 세거 성씨.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김수로를 시조로 한다. 13세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고려 후기 142개로 분파하였다.
[연원]
경상북도 성주군에 세거하는 김해 김씨 가문은 김목경(金牧卿)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관(金管)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 김불비(金不比)를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 김경신(金敬臣)을 파조로 하는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등이 있다.
[입향 경위]
김해 김씨 경파는 김성필(金聖弼)과 김대생(金大生)[1557~1620]을 입향조로 한다. 김성필은 김목경의 11세손으로 1690년경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로 이거하였다. 후손이 벽진면 배수리 신월에 거주한다. 김대생의 자는 공숙(公淑), 호는 남곡(南谷)이다. 김목경의 12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례직(金禮直), 아버지는 김수량(金守良)이다. 온양현감(溫陽縣監)·고령현감(高靈縣監) 등을 지냈다. 원주(原州)에서 대가면 금산리 대산령(大山嶺)으로 이거하였다. 삼현파의 경우 김정남(金貞南), 김풍립(金豊岦), 김입경(金立慶) 등이 성주로 이거하였다. 김정남은 김관의 8세손으로 1544년 청도 백곡에서 가천면 마수리로 입향하였고, 김풍립은 김관의 9세손으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고 수륜면 송계리 송산으로 입향하였다. 김입경은 김관의 11세손으로 병자호란 때 선남면 도흥리에 정착하였다. 16세손 김현범(金顯範)·김현택(金顯宅)·김현성(金顯晟)·김현황(金顯晃) 4형제가 밀양에서 신흥으로, 김현두(金現斗)·김기두(金璣斗) 형제가 초전면 용성리, 김현경(金顯敬)이 월항면 대산리 등에 정착하였다. 이외에 김문달(金文達)이 창원에서 수륜면 법산으로, 김신도(金臣道)가 청도 백곡에서 용암면 기성리로, 김성장(金性章)이 남원에서 용암면 용정리로 입향하였다. 판서공파는 김춘인(金春仁)[1567~1630]을 입향조로 한다. 김춘인의 자는 군언(君彦), 호는 개옹(漑翁)이다. 할아버는 김언충(金彦忠), 아버지는 김응박(金應鎛)이다. 김춘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응박과 백부 김응일과 함께 창의하였다. 백부가 의령 정암진(鼎巖津)에서 순절하자 아버지를 모시고 창원에서 지금의 성주군 용암면 용계리 배만마을로 이거하였다. 도총관공파는 김만증(金萬增)을 입향조로 한다. 김만증은 김경신의 7세손 김극검(金克儉)의 현손이다. 임진왜란 때 김해에서 성주목 용기(龍基)[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대흥리]로 이거하였다. 김연(金衍)은 효종 때 초곡방(草谷坊) 삽제[현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명포리] 으로 이거하였다. 김연의 6세손 김업섭(金業燮)이 조곡방(租谷坊)에 정착하였는데, 용암면 계상리이다.
[현황]
경상북도 성주군에 세거하는 김해 김씨는 2015년 기준 3,205명이 확인된다.
[관련 유적]
김해 김씨 경파 문화유산으로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에 대산재(大山齋)가 있다. 대산재는 김대생이 벼슬을 마치고 금산리에 대산령에 은거하며 세운 것이다. 세월에 퇴폐한 것을 1967년 중건하였다. 삼현파 문화유산으로 수륜면 송계리 송산에는 김풍립을 추모하는 송와재(松窩齋)있으며, 판서공파 유산으로 김언충·김응일·김응박·김춘인·김이담을 추모하는 재실인 개옹정(漑翁亭)있다. 개옹정은 1964년 개축하고 첨모재(瞻慕齋)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