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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377
한자 安東權氏
영어공식명칭 Andong Gueon Clan
이칭/별칭 영가 권씨(永嘉權氏),화산 권씨(花山權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장산리
성씨 시조 권행
입향 시조 권유검|권희맹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권행(權幸)이 시조이고 권유검(權有儉)·권희맹(權希孟) 등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연원]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는 태사(太師) 권행으로 원래 성씨는 ‘김씨(金氏)’였다. 후삼국 시기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원인 고창(古昌)의 호족으로 있었다. 929년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고창을 공략하자, 권행은 고려 왕건(王建)의 편에서 싸웠다. 그 공으로 권행은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봉해졌으며, 고창은 안동부로 승격하였다. 이때 왕건은 권행의 재략을 기려 병기달권(炳幾達權)의 권을 성씨로 내려주었다. 이로써 권행과 그 후손들은 안동 권씨가 되었다. 이후 안동 권씨는 번창하여 10세에 이르러 15개 대파(大派)가 생겨났고, 각 파마다 여러 지파를 형성하였다.

[입향 경위]

성주의 안동 권씨 입향조로는 권유검과 권희맹[1475~1525]이 있다. 권유검은 검교공파(檢校公派)의 파조인 권척(權倜)의 후손이다. 문과 급제 후 가산군수(嘉山郡守) 등을 지냈으나, 세조가 권력을 잡게 되자 1455년 화를 피해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두리실로 내려와 영야헌(詠野軒)을 짓고 은거하였다. 권유검의 고손인 권응일(權應鎰)은 권율(權瑮)·권륵(權玏)·권녹(權琭) 세 아들을 두었는데, 권륵과 권녹의 후손은 월항면 장산리 일대에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권유검의 둘째 손자 권수중(權守中)의 후손은 용암면 문명리에 세거하고 있다. 한편,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물남개는 일찍이 성산 여씨(星山呂氏)가 살고 있었는데, 고려 후기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여극회(呂克誨)의 손자사위인 권희맹(權希孟)이 들어오면서 안동 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현황]

2015년 기준으로 성주 지역에 거주하는 안동 권씨는 516명이다. 현재 경상북도 성주군안동 권씨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두리실과 갓골, 용암면 문명리, 월항면 장산리, 선남면 문방리 물남개 등지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용암면 본리리 갓골에는 입향조 권유검을 기리는 영모재(永慕齋)와 신도비인 ‘영야헌권공유허비(詠野軒權公遺墟碑)’가 있다. 또한 갓골 입구에는 권재수(權在洙)의 학덕을 기리고자 1994년에 건립한 시비 ‘두릉팔경시비(杜陵八景詩碑)’가 있다. 선남면 문방리 물남개권희맹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데, 신도비명은 ‘관찰사권공신도비명(觀察使權公神道碑銘)’이다.

[참고문헌]
  • 『성주누정록』(성주문화원, 2011)
  • 『성주군지』(성주군·성주문화원, 2012)
  • 『성주마을지』(성주문화원, 2015)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https://kosi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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