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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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公所 |
영어공식명칭 | Homsil Gongso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송호상 |
설립 시기/일시 | 1860년대 - 홈실공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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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홈실공소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
성격 | 공소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에 있었던 천주교 소속 공소.
[설립 목적]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일대에 천주교 교리를 전파하고,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이끌기 위해 설립, 운영되었다.
[변천]
홈실공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과 초전면, 김천시 농소면의 경계에 있는 별미산 자락에 있었다. 마을의 지형이 ‘홈’처럼 생겼다 하여 ‘홈실’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초기 천주교 신자였던 성섭(成涉)[1718~1788]의 후손들이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으로 이주해 와서 살다가 1791년 신해박해 당시 홈실로 피난을 오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창녕 성씨 문중으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가실성당 터에 살았던 성순교가 1860년 경신박해를 피해 상주로 피난 갔다가 순교를 당하고 그 후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옴으로써 신자촌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1893~1894년 김보록 신부의 교세 통계표에는 17명의 신자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신자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1950년대 철산공소 박상봉[마티아] 회장의 전교로 다시 몇 가정이 성당에 나왔다고 한다. 이후 초전공소가 생긴 후 성당으로 승격되자 성순교의 후손 성기운 가정 등 공소 신자들이 모두 초전공소에 다녔다고 한다. 홈실공소는 초전공소가 성장하여 성당으로 승격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홈실공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있는 초전성당 설립의 배경이 되었던 공소 가운데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