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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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端宗胎室 |
영어공식명칭 | Placenta Chamber of King Danjong |
이칭/별칭 | 단종 가봉 태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산11-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심현용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451년 1월~1451년 3월 - 단종 태실[2차 아기 태실]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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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단종 태실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산11-1 |
성격 | 태실 |
관련 인물 | 단종(端宗)[1441~1457]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법림산 태봉에 있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태실 자리.
[개설]
단종(端宗)[1441~1457]은 1441년(세종 23) 7월 23일에 문종(文宗)과 현덕 왕후(顯德王后)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448년(세종 30) 세손에 책봉되었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452년 5월에 조선 제6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1457년(세조 3) 6월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었다.
[건립 경위]
단종 태실(端宗胎室)은 단종이 원손(元孫)일 때인 1441년 윤 11월 26일에 세종의 아들 18명의 태실이 있는 선석산 태봉[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에 처음 조성[1차 아기 태실]되었다. 단종이 왕세자가 된 후 1450년 9월에 풍수학(風水學)에서 왕세자의 태실이 세종의 아들인 여러 대군과 군의 태실들과 함께 있다 하여 옮기자고 주장하여, 1451년(문종 1) 1월~3월에 허후(許詡)를 안태사로 삼아 가야산 법림산 태봉[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산11-1번지]으로 아기 태실을 옮겼다[2차 아기 태실]. 새로 태실을 조성한 후 동쪽·남쪽으로 각 9,600보, 서쪽으로 9,590보, 북쪽으로 470보를 정하여 사방에 금표비를 세우고, 품관 8인과 백성 6인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단종이 임금에 즉위한 후 재위 기간[1452~1455]에 가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1453년(단종 1) 10월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잡은 것으로 보아 그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 세조(世祖)에 의해 1458년(세조 4) 7월에 가봉 태실이 철거되었다.
[위치]
단종 태실 자리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산11-1번지이다. 가야산(伽倻山)[해발 1,430m]이 뻗어 내린 지맥에서 북쪽의 주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삿갓 모양으로 다시 솟아오른 태봉산 정상에 단종 태실이 위치하였다. 정상부에는 남북으로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데, 이 중 남쪽 봉우리[해발 333m]가 태실지로 추정된다. 이 태봉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돌혈(突穴)에 해당하는 명당이다.
[형태]
단종 태실은 아기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된다. 1차 아기 태실은 성주 세종 대왕 자 태실(星州世宗大王子胎室)이 있는 선석산 태봉에 있는데[법림산으로 옮겨 가면서 땅에 묻혔던 것이 1977년 정비 시 발견되어 복원됨], 지하에는 방형의 태함을 안치하고 태함에는 태지석과 태호를 부장하였으며, 지상에는 중앙 태석과 아기비를 세웠다. 법림산 태봉으로 옮겨진 2차 아기 태실은 선석산 태봉의 1차 아기 태실과 같은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단종 재위 시 가봉되었으나 세조 때 철거되어 가봉 태실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법림산 태봉에 잔존한 우전석·상석·주석·동자석 등의 가봉 석물로 보아, 그 구조는 지상에 중앙 태석을 안치하고 주변에 팔간 난간석을 돌렸으며, 가봉비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황]
2차 아기 태실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민묘가 들어서 있다. 일부 가봉 석물들이 민묘의 시설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변에 가봉 석물들이 흩어져 있다. 당시 태봉 가까이에 법림사가 있었는데, 태봉 주변의 절을 축령(祝齡)하는 곳으로 삼으라는 기록으로 보아 법림사가 단종 태실의 수호 사찰이었을 것이다. 한편 경상남도 사천시의 ‘작은 태봉산[해발 100.5m]’에 있는 태실이 단종 태실로 알려져 현재 ‘사천 단종 태실지(泗川端宗胎室地)’라는 이름으로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1975년 2월 12일]되어 있으나, 이는 조선 제8대 임금인 예종(睿宗)의 장남 인성 대군(仁城大君)[1461~1463]의 태실[1462년 장태]로 밝혀졌다.
[의의와 평가]
단종 태실은 조선 시대 태실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초기의 태실이다. 아기 태실이 최초로 옮겨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조선 전기 가봉 태실의 구조와 석물 형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