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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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宗胎室 |
영어공식명칭 | Placenta Chamber of King Taejong |
이칭/별칭 | 태종 가봉 태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산6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심현용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401년 - 태종 태실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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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태종 태실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산65 |
성격 | 태실 |
관련 인물 | 태종(太宗)[1367~1422]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조곡산 태봉에 있는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의 태실.
[건립 경위]
태종(太宗)[1367~1422]은 1367년(공민왕 16) 5월 16일에 함경도 함주[현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태조(太祖)와 신의 왕후(神懿王后) 사이에서 5남으로 태어났다. 태종이 1400년(태종 즉위년)에 임금에 즉위하자, 예에 따라 1401년(태종 1) 7월에 하륜(河崙)을 태실증고사로 삼아 길지를 찾게 하였다. 그해 9월에 민제(閔霽)를 안태사(安胎使)로 삼아 함주(咸州)에 가서 장태된 태를 가져왔으며, 같은 해 10월에 경산부(京山府) 조곡산[해발 237.2m]에 가봉 태실을 조성하고 태실 시위품관 4인과 수호인 10호를 두었다. 이로 인해 당시 경산부였던 성주 지역은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위치]
태종 태실(太宗胎室)은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산65번지에 있다. 주산인 조곡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의 끝자락에 삿갓 모양으로 돌출되어 솟아오른 태봉[해발 137.2m] 정상에 자리한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돌혈(突穴)에 해당하는 명당이다.
[형태]
태종의 태실은 훼손되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서삼릉 태실 집장지에서 출토된 태지석·태호와 개첨석·중동석·주석·동자석·함개 등의 잔존 가봉 석물로 살펴보면, 지하에는 태호와 태지석을 매납한 태함을 안치하였으며, 지상에는 가운데에 중앙 태석을 안치하고 주변에 팔간 난간석을 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일제 강점기 때 태를 봉출해 서삼릉으로 옮겨 가면서 태실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이후 민묘가 들어서면서 일부 가봉 석물들을 민묘의 축대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성주군에서 가봉 석물들을 수습하여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또 태봉의 서쪽에는 절터골이 있는데, 조곡산에 태봉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태봉사가 당시 태종 태실의 수호 사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서삼릉 태실 집장지 수습 발굴 조사 때 고려 말의 도기 태호[내호·외호]와 1929년에 제작한 태지석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태종 태실은 조선 시대 태실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초기의 가봉 태실로, 민간 태 처리 습속에 의해 장태된 태를 태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길지로 옮겨 가봉 태실을 조성하는 조선 왕실의 태 처리 방법을 보여 준다. 또 조선 초기 가봉 태실의 구조와 석물 형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