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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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木花- |
이칭/별칭 | 「명잣기」,「베짜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동연 |
채록 시기/일시 | 1979년 4월 21일 - 「목화 노래」 박삼선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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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 「목화 노래」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 |
채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리 |
성격 | 민요|노동요 |
기능 구분 | 길쌈 노동요 |
형식 구분 | 독창 |
가창자/시연자 | 박삼선 |
[정의]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여성들이 길쌈할 때 부르는 소리.
[채록/수집 상황]
「목화 노래」는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되어 있다. 1979년 4월 21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1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리]에서 박삼선이 구연한 것을 조사, 채록하였다.
[구성 및 형식]
길쌈은 단순 반복 작업의 연속으로 정제된 형태의 서사 민요가 발달하였으나 노동 형태와 노랫말의 연관성은 없다. 그리하여 서사 민요로서 시집살이의 애환 등 삶의 고달픈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많다.
[내용]
「목화 노래」는 성주 지역의 여성들이 길쌈하며 불렀던 민요이다. 「명잣기」, 「베짜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복되는 단순 노동을 하며 부른 노래라서 노동의 형태와 노랫말이 긴밀하게 연관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길쌈은 농사일과 같이 강한 육체 활동이 수반되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시집살이의 애환과 졸음을 쫓는 말 등을 노래함으로써 지루한 일의 작업 능률을 높인다. 또한, 긴 시간 동안 일하면서 부르기 때문에 비교적 장형의 노래로 발달하였다.
목화는 무명옷을 짓거나 솜이불에 사용되었기에 중요한 농사 활동이었다. 목화솜은 9월부터 수확하여 길쌈을 한다. 전국적으로는 「목화 따는 소리」라는 명칭으로 많이 남아 있다. 성주에서 수집된 「목화 노래」의 구연자에 의하면 길쌈이나 가사 노동을 할 때 주로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길쌈 노동요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노동 환경에서 불려진 노래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연천땅에//박을숨거
삼티골로//벗어나가
서울가던//선베님이
이박넝쿨//가져가면
첫년과게//내할걸
저건니라//장친밭에
목화총총//숨것더니
호비호비//메고가소
그꽃피자//열매열어
열매끝에//목화되어
저건네라//장친밭에
머리좋고//키큰처녀
목화따는//저처녀야
연지분을//너를줄까
연지분도//나도있네
윤도장천//너를줄까
윤디장천//나도있네
바늘골미//너를줄까
바늘골미//나도있네
서울가던//선베님이
서울을//당도하니
저건나라//울뽕에
머리좋고//키큰처제
울뽕따는//저처제야
저건네라//저선베는
꽃을보고//지네치네
꽃아꽃아//설어마라
내집에도//꽃을두고
남의꽃에//손댈까
추저울까//굴산고개
내나숨가//천도복숭
올라가는//구관사또
맛좋다고//따다묵고
그을//비어다가
치리삼칸//집을지어
굵은바늘//시동시와
돈으로//구둘놓고
당사실로//알매얽어
범나비로//문을닫아
은가락지//고리걸어
징길수가//만무하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길쌈은 사대부가 여성들에게 부덕(婦德)으로 권장되었던 양잠업이었다. 사대부의 의복 재료가 명주였으며, 양잠이 다른 직물보다 노동 과정 및 방적 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사회경제적 변화와 장시의 활성화에 의해 치산(治産)의 수단이 되었다. 특히 여성의 생산 노동과 치산 능력이 중요해짐에 따라 단순한 부덕의 영역에서 벗어나 여성의 주요 경제 활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여성의 생활상, 특히 여성 공동체의 유대와 문화적 전승 및 교육의 기능에 대해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여성 경제사적 맥락에서 조선 후기 여성의 경제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