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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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紬- |
영어공식명칭 | Myeongju Jjagi|Silk Weaving |
이칭/별칭 | 두리실 명주 짜기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상성로 276-3[본리리 74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누에고치를 풀어낸 견사로 직물을 직조하는 행위.
[개설]
명주(明紬)는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견사를 베틀 위에서 짠 평직 직물로서 비단의 일종이다. 신라 시대 당나라로 수출했던 견직물은 나일론이 발명되고 방직 공장이 세워지면서 맥이 끊겼지만,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두리실 마을에서 조옥이 기능장을 통해 전수되었다. 현재는 전수 교육 조교 이규종 명예 보유자를 통해 전승되고 있다.
[명주의 연원과 명칭]
양잠의 역사는 고조선(古朝鮮)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 시대에는 당나라로 수출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도 좋은 질의 견직물이 생산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누에씨를 국가에서 공급하는 등 누에고치를 개량하여 얇고 가는 명주를 짜 중국으로 연간 만필 정도를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옷감을 짜는 장인 중 무늬를 넣어 짜는 장인을 능라장(綾羅匠)이라 부르고 상의원(尙衣院)에 소속되었으며, 무늬가 없는 직물을 짜는 방직장(紡織匠)은 제용감(濟用監)에 소속되었다. 견사로 제직된 견직물을 명주로 부른 것은 1803년대 『계산기정(薊山紀程)』에 기록된 중국에 보낸 직물 명에서 확인되지만 정확한 시기와 변화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전까지 명주는 주(紬)의 종류와 굵기, 색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되고 호칭되었다.
[명주의 생산과 소비]
명주는 농가에서 뽕나무를 심어 가꾸고 누에를 쳐서 누에고치로부터 비단실을 뽑아 베틀에서 직조한다. 남자의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감 그리고 여자의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 속옷감으로 사용하였고, 이불과 요 등 면직물 다음으로 일상생활에서 소비되었다. 1900년대 초반 소규모 제사 공장(製絲工場)이 설립되기 전까지 가정에서는 부인들이 부수입으로 명주 짜기와 무명 짜기를 행하였다. 경상북도 성주군의 조옥이 명주 짜기 기능장은 겨울이면 무명 짜기, 초여름과 가을에는 명주를 짜고, 삼복에는 삼베를 짰다고 증언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 대규모 제사 공장 설립과 개량 직기 등의 사용으로 명주가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가정 내 베틀을 이용한 직조는 중단되었다.
[명주 짜기 과정]
명주 짜기 과정은 양잠이라 불리는 누에치기에서 시작된다.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고치를 짓게 하는 과정이다. 다음으로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풀어서 타래실을 만드는 과정이다. 솥 안에 누에고치와 물을 넣고 끓이면 원하는 실의 굵기에 따라서 젓가락으로 저어 실을 당겨 뽑는다. 명주 한 필에 누에고치 1관[3.75㎏]이 들며 1관에서 1/10 정도의 실을 만든다. 이렇게 뽑아낸 명주실은 물레에 돌려 실을 잣는다. 이후 베틀에 넣고 명주를 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