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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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年雪-碑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446-1|성주고교길 79[금산리 115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진 |
건립 시기/일시 | 2009년 - 백년설 노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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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915년 5월 19일 - 백년설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12월 6일 - 백년설 사망 |
현 소재지 | 성밖숲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446-1 |
현 소재지 | 성주고등학교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고교길 79[금산리 1158] |
성격 | 노래비 |
관련 인물 | 백년설 |
재질 | 석재 |
[정의]
2009년 성주 출신 대중 가수 백년설의 업적과 노래를 기념하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세운 2기의 비.
[개설]
백년설(白年雪)[1915~1980]은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대중 가수이자 영화 제작자, 사업가로 1915년 성주에서 태어나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였다. 본명은 이갑룡이고, 나중에 이창민으로 개명하였다.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건립 경위]
백년설 노래비는 수많은 대중가요 희트곡을 남긴 대중 가수 백년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9년 건립하였지만, 1941년 일제 강점기에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등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일본 제국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부른 행적 때문에 노래비 건립에 대한 찬반 논란을 낳기도 하였다.
[위치]
백년설 노래비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밖숲과 성주군 성주읍 성주고등학교 교정 등 두 곳에 있다.
[형태]
성주 성밖숲에 자리하고 있는 백년설 노래비는 방형의 기단석 위에 3단으로 세웠다. 제1단은 기념문을 새긴 직사각형 다듬돌이고, 제2단은 백년설의 대표곡 「나그네 설움」의 노래말을 새긴 다듬돌이며, 가장 상단인 제3단은 ‘백년설 노래비’라는 비명을 새긴 자연석이다. 성주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노래비는 「나그네 설움」 노랫말을 음표와 함께 새긴 비석 위에 백년설의 흉상을 세웠다. 노랫말을 적은 비석 뒷면에는 백년설의 연보를 새겨 놓았다.
[현황]
성밖숲에는 노래비만 있으며, 성주고등학교에는 노래비와 흉상이 같이 건립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백년설은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많은 대중가요를 히트한 업적도 있지만,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을 남김으로써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노래비 또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