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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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鰲巖書院 |
영어공식명칭 | Oam Neo-Confucian Academy |
이칭/별칭 | 성주 오암서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1[남은리 37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소윤 |
건립 시기/일시 | 1714년 - 운암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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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741년 - 운암서원 훼철[서원 정리령]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5년 - 오암서원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7년 - 오암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5년 - 오암서원 대강당, 광영루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2년 - 오암서원 효덕사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9년 - 오암서원 오암정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82년 - 오암서원 복원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8년 - 오암서당 복원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7년 - 오암서원 복원 향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오암서원 오암학계 조직 |
현 소재지 | 오암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1[남은리 374] |
원소재지 | 운암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1[남은리 374] |
성격 | 서원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칸 반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위치]
오암서원(鰲巖書院)은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1[남은리 374번지]에 있다. 성주군 수륜면과 고령군 경계 지점인 국도 제33호선 우측 산기슭 아래에 동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변천]
1714년(숙종 40)에 사림이 오암(鰲巖)에 운암서원(雲岩書院)을 세워 최항경(崔恒慶)[1560~1638]을 제향하다가 1741년(영조 17)에 서원 정리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781년(정조 5) 사림의 공론으로 복원하여 ‘오암서원’이라 편액하였다. 1782년(정조 6)에 죽헌정사(竹軒精舍) 자리에 오암서원을 세우고 최항경의 두 아들 최은(崔𨏈)[1583~1656]과 최린(崔轔)[1597~1644]을 추배하였다. 이후 1865년(고종 2)에 다시 훼철되었다가, 1918년에 후손들이 서원이 있던 터에 서당을 세웠고 1977년에 중수하였다. 1985년에 후손들이 대강당과 광영루(光影樓)를 지었다. 2002년에는 후손 최창곤(崔昌坤)이 효덕사(孝德祠)를 건립하였고, 2009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오암정(鰲巖亭)을 세웠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남향하여 자리한다. 구조는 중앙에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측 칸에 1칸 반씩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사당인 효덕사는 3칸의 맞배지붕집 구조이다. 재사(齋舍)는 서원 밖에 동향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재사의 우측에 오암정이 있다.
[현황]
오암서원은 최항경과 최은, 최린을 봉향한 서원이다. 1978년에 서원 복원을 결의하였고 1999년에 ‘오암학계’를 조직하여 2007년에 서원 복원 향사를 하였다.
[의의와 평가]
최항경은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으로 일찍이 학행이 뛰어나 사림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며, 최항경의 두 아들 역시 정구의 문인으로 학문에 힘써 이들 세 부자를 일컬어 ‘수하삼현(水下三賢)’이라고 하였다. 이때 ‘수하’는 최항경이 머문 오암정사(獒巖精舍)가 정구의 회연서원(檜淵書院)보다 하류 쪽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 볼 때 오암서원은 학문적으로 명망이 높은 3인을 추모하고, 후학들이 이를 본받도록 교육을 담당한 곳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보기 드물게 삼 부자가 함께 배향된 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