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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975
한자 禪石寺
영어공식명칭 Seonseoksa Temple
이칭/별칭 성주 선석사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33[인촌리 21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92년연표보기 - 신광사 창건
개칭 시기/일시 1361년연표보기 - 신광사에서 선석사로 개칭
중수|중창 시기/일시 1684년연표보기 - 선석사 중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2월 23일 - 선석사 소장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3년 4월 8일 - 선석사 내 ‘성주 선석사 대웅전’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지정
최초 건립지 신광사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현 소재지 선석사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33[인촌리 217]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義湘)[625~702]
전화 054-933-9800
홈페이지 선석사(http://www.seonseoksa.org)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선석사(禪石寺)는 신라 시대인 692년(효소왕 1)에 승려 의상(義湘)[625~702]이 창건한 화엄 십찰(華嚴十刹) 중의 하나로, 처음에는 신광사라고 불렀다. 신광사 자리는 현재보다 서쪽에 있었는데, 고려 말인 1361년(공민왕 10)에 승려 혜근(惠勤)[1320~1376]이 신광사의 주지가 되어 절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때 절을 옮기려고 터를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와 ‘닦을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붙여 선석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내밀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혜묵, 나헌 등이 중창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이건하였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이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대웅전(大雄殿)과 명부전(冥府殿), 칠성각(七星閣), 산왕각(山王閣), 어필각(御筆閣), 정법료(正法寮) 등의 당우를 갖추었다. 성주 세종 대왕 자 태실(星州世宗大王子胎室)이 있는 태봉(胎封)에서 약 200m 거리에 있던 선석사는 왕자의 태실(胎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영조(英祖)가 어필(御筆)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어필을 보관하였던 곳이 어필각이었으나, 이후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에 보관되어 있다. 어필각 주위에는 바람이 불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쌍곡죽’이라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는 그 소리가 맑고 청아해 다른 피리와 견줄 바가 아니었는데, 이 피리를 교방적(敎坊笛)이라고 하였다. ‘쌍곡죽’은 남아 있지 않은데 최근 대웅전 뒤에 복원하여 조성하고 있다.

[활동 사항]

선석사는 숱한 역사의 굴곡을 함께하였는데, 특히 조선 시대에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다. 현재 성주군에서 가장 큰 사찰로 봄마다 산사 음악회를 개최하며, 지역 주민에게 문화 공간과 수행 공간, 교육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선석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원음각(圓音閣), 일주문(一柱門), 태장전(胎藏殿), 누각, 영산회상 괘불전(靈山會相掛佛殿), 템플 스테이관, 그리고 정법료 등의 여러 요사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 건물이다. 절에서 약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세종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이 있으며, 최근 대웅전 뒤 대나무 숲 아래에 야외 미륵부처를 조성하였다.

[관련 문화재]

선석사에는 2009년 2월 23일에 보물로 지정된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星州禪石寺靈山會掛佛幀)과 2013년 4월 8일에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성주 선석사 대웅전(星州禪石寺大雄殿)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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