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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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殷東 |
영어공식명칭 | Choe Eund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66년 4월 2일 - 최은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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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5년 - 최은동 문석봉 의진에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11월 20일 - 최은동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 최은동 건국 포장 추서 |
출생지 | 최은동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1154 |
활동지 | 최은동 활동지 - 충청남도 일원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성주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최은동(崔殷東)[1866~1936]은 1866년 4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1154번지에서 태어났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발생한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乙未事變)과 12월 30일[음력 11월 15일] 단행된 단발령(斷髮令)에 반발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가장 먼저 일어난 의병이 문석봉(文錫鳳) 의병 부대이다.
문석봉은 을미사변 소식을 듣고, 충청남도 공주부(公州府) 유성(儒城)에서 의진을 조직하였다. 지휘부로 선봉에 김문주(金文柱), 중군에 오형덕(吳亨德), 군향에 송도순(宋道淳) 등을 임명하였다. 이어서 을미사변을 ‘천고에 없는 강상(綱常)의 대변’으로 규정하고 적을 토벌하여 흉당(兇黨)을 멸하고 나라를 지킬 것을 호소하는 통문(通文)을 각지에 발송하였다.
최은동은 문석봉이 1895년 10월 20일 유성 장터에서 의병 부대를 편성했을 때 의진의 영장(營將)이 되어 창의장 문석봉을 도와 행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진은 공주부 관아를 공격 목표로 잡고, 우선 회덕현(懷德縣)을 급습하여 무기를 확보한 뒤 300여 명의 의병을 무장시켜 유성 장대리에 주둔하였다. 이튿날 10월 21일 오전에 진잠, 지금의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들어가 며칠을 머문 뒤, 10월 28일 공암,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를 거쳐 공주부를 향해 진격하였다.
그러나 공주부관찰사 이종원(李鍾元)이 보낸 관군과 공주 와야동,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서 격돌하였으나 관군의 매복 작전에 말려 패하고 말았다. 최은동은 창의장 문석봉을 따라 중군 오형덕 등과 함께 경상도 지방으로 내려와 경상북도 고령현감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재기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현감의 밀고로 1895년 11월 24일 순검(巡檢) 서윤묵(徐潤黙)·정인원(鄭仁源)·이효진(李孝鎭) 등에게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뒤 대구 감옥에 구금되었다. 이후 옥중 심문을 받으면서도 재기를 꾀하던 중, 1896년 봄 창의장 문석봉, 중군 오형덕 등과 함께 옥문을 부수고 탈출하였다. 1936년 11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8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