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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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桂煥 |
영어공식명칭 | I Gyehw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12월 19일 - 이계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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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7일 - 이계환 성주군 가천면 동원리 독립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2월 21일 - 이계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이계환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이계환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
거주|이주지 | 이계환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동원1길 24[동원리 847] |
활동지 | 이계환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동원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19년 3월 27일 성주군 가천면 동원리 독립 만세 운동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계환(李桂煥)[1898~1920]은 1898년 12월 19일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만세 시위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동원리의 이상해(李相海)가 붓장수 신성백(愼性伯)으로부터 각처의 만세 운동 소식을 들었다. 이에 이상해는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1919년 3월 23일, 김명준(金命俊)·이계환·정길수(鄭吉洙) 등에게 “우리도 독립을 바라는 조선 사람으로서 마땅히 각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 시위를 본받아 만세를 불러야 한다”고 권유하였다.
1919년 3월 27일 저녁 이계환은 김명준·정길수 등과 함께 같은 마을 이태희(李泰熙)의 집 앞에 마을 청년들과 주민들을 모아 놓고 독립 만세의 목적을 설명한 뒤, 저녁 7시부터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출동한 창천주재소 경관들에게 이계환·이상해·김명준·정길수·권작불(權作弗)·김숙이(金淑伊)·최춘이(崔春伊)·정계술(鄭桂述) 등이 붙잡히면서 군중은 흩어졌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1920년 1월 2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