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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819
한자 李季埈
영어공식명칭 I Gyejun
이칭/별칭 덕소(德邵),암관(岩觀)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 12월 28일연표보기 - 이계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이계준 제1차 유림단 의거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29년 4월 22일연표보기 - 이계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이계준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이계준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 752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이계준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활동지 이계준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경산(京山). 자는 덕소(德邵), 호는 암관(岩觀). 아버지는 이병상(李秉相)이다.

[활동 사항]

이계준(李季埈)[1869~1929]은 1869년 12월 28일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 752번지에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일산(一山) 이탁소(李鐸韶)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에 이어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던 만국 평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곽종석(郭鍾錫) 등이 작성한 파리 장서[독립 청원서]에 한국 유림 대표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파리 장서에서는 일제가 한국 국권을 빼앗기 위해 자행한 불법성을 국제 사회에 폭로함과 동시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1919년 3.1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독립 선언문(獨立宣言文)」이 발표되었으나 유림 측은 민족 대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에 김창숙(金昌淑) 등은 영남 유림의 종장 곽종석을 앞세우고 경상북도 성주 유림 장석영·송준필(宋浚弼) 등과 상의하여 프랑스에서 열리는 파리 강화 회의에 글을 보내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계준은 이때 작성된 파리 장서에 장석영·이계원(李啓源) 등과 함께 서명하였다.

파리 장서 운동은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경에 시작된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으로 붙잡힌 송회근(宋晦根) 등을 일제 경찰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었다. 일제 경찰은 파리 장서에 서명한 곽종석·장석영·송준필 등 전국 유림 대표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했고, 이계준성주경찰서에 붙잡혔다. 이어 대구경찰서를 거쳐 대구 감옥에서 미결수로 고초를 겪다가, 1920년 3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1929년 4월 2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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