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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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義模 |
영어공식명칭 | O Uim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1월 6일 - 오의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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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오의모 성주읍 장날 독립 만세 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오의모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46년 12월 29일 - 오의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오의모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오의모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동포리 |
거주|이주지 | 오의모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동포리 |
활동지 | 오의모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오의모(吳義模)[1879~1946]는 1879년 1월 6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동포동[현 동포리]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동포동에 있는 예수교[耶蘇敎] 북장로파 소속 예배당의 영수(領袖)이다. 1919년 3월 27일 성주군 선남면 소학동[현 소학리]의 이현기(李玄琪)가 주도한 만세 시위 운동과 가천면 동원동[현 동원리]의 이상해(李相海)가 주도한 만세 시위 운동에 자극받은 성주 지역의 유림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연합하여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현 옥화리] 교회 조사(助事) 유진성(兪鎭成)은 유림 측에서 4월 2일 성주읍 장날에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3월 30일 유림 측의 송회근(宋晦根)을 만나 연합하여 만세 시위를 펼치기로 협의하고 태극기 제작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성주군 각 면의 교인과 각처 교회 간부들을 규합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경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교회 영수 홍진수(洪鎭洙)와 조사 김재곤(金在坤), 그리고 성주군 북장로파 신도 김석규(金錫圭)·김치권(金致權)·김학이(金鶴伊)·김상직(金尙直) 등과 함께 성주면 경산동[현 성주읍 경산리]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오의모를 비롯한 기독교도들은 태극기를 들고 성주읍 시장을 향해 나아가면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고, 유림 측에서도 송우선(宋祐善)·송회근의 주도하에 송수근(宋壽根)·송훈익(宋勳翼)·송문근(宋文根)·송규선(宋圭善)·이봉희(李鳳熙) 등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호응하였다.
이때 오의모는 김재곤·홍진수·김석규·김치권·김학이·김상직 등과 함께 체포되어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김재곤·홍진수 등과 함께 징역 1년, 김석규·김치권·김학이·김상직 등 4명은 각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6년 12월 29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