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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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旺淵 |
영어공식명칭 | Yeo Wangyeon |
이칭/별칭 | 성일(成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남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5월 22일 - 여왕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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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여왕연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와 벽진면 해평동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검거됨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여왕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71년 11월 14일 - 여왕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여왕연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여왕연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2길 9-4[수촌리 965] |
거주|이주지 | 여왕연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2길 18-10[수촌리 939-2] |
활동지 | 여왕연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
활동지 | 여왕연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일(成一).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1481~1553]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여구회이다.
[활동 사항]
여왕연(呂旺淵)[1898~1971]은 1898년 5월 22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현 벽진면 수촌리]에서 출생하였다. 경상북도 성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에 같은 마을의 여홍연(呂弘淵)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만세 운동의 영향으로 한 달 뒤인 4월 2일 성주읍 장날의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여 성주 장터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성주 장터 시위가 끝난 뒤에는 여우룡(呂又龍)과 함께 돌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성주읍 장터 시위에서 일경의 야만적인 발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하였다.
그리고 이에 격분한 100여 명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성주 장터 시위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재규합하여,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에서 여문회(呂文會) 등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밤늦게까지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검거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여유룡과 함께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았다.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했으나,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된 데 이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71년 11월 14일 사망하였다. 현재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939-2에 여왕연의 집터가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