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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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基學 |
영어공식명칭 | No Gihak |
이칭/별칭 | 노규화(魯圭和)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10월 8일 - 노기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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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노기학 성주읍 장날 독립 만세 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5일 - 노기학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1월 22일 - 노기학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9년 - 노기학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노기학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동락길 187-16[동락리 696] |
거주|이주지 | 노기학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동락길 187-16[동락리 696] |
활동지 | 노기학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노기학(魯基學)[1888~1933]은 1888년 10월 8일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동락길 187-16[동락리 696]에서 태어났고, 다른 이름으로 노규화(魯圭和)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 지역의 유림들과 기독교인들이 합세하여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을 계획하였다.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의 노기학도 성주읍 경산리의 배상윤(裵相潤)과 어물상 서병준(徐丙俊), 대가면 흥산리의 백성흠(白聖欽), 칠봉리의 김원술(金元述), 벽진면 매수리의 박경하(朴京夏), 초전면 자양리 출신의 김구진(金龜鎭)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 오후 1시경 성주읍 경산리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기독교도들이 먼저 태극기를 들고 성주읍 시장으로 나아가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시장 중앙에 모여 있던 유림 측도 송우선(宋祐善)·송회근(宋晦根)의 주도하에 이에 호응했고, 노기학도 송수근(宋壽根)·송훈익(宋勳翼)·송문근(宋文根)·송규선(宋圭善)·이봉희(李鳳熙) 및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일본 경찰이 주도 인물들을 경찰서로 연행하자, 분노한 3,00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로 몰려가 만세를 부르고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였다. 일제 경찰의 발포로 이태희(李兌熙)와 성명 미상자 2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이봉희 등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시위 군중들은 서북쪽 산 위에 모여 불을 피우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다가 밤 10시경에 해산하였다.
노기학은 배상윤·서병준·백성흠·김원술·박경하·김구진 등과 함께 체포된 후에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어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배상윤·서병준·백성흠·김원술·박경하·김구진 등과 함께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3년 1월 2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