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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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斗熙 |
영어공식명칭 | Gim Duhui |
이칭/별칭 | 김길남(金吉男)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허종 |
출생 시기/일시 | 1921년 1월 4일 - 김두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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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9년 - 김두희 소네자키타일주식회사의 직공으로 일함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3월 - 김두희 민족부흥회 활동으로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7월 16일 - 김두희 석방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12월 28일 - 김두희 비밀결사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5월 5일 - 김두희 나고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 집행 유예 5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2000년 2월 29일 - 김두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김두희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음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두희 건국 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음 |
출생지 | 김두희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
학교|수학지 | 리츠메이칸[立命館]중학교 - 일본 교토 |
활동지 | 김두희 활동지 - 일본 교토 |
묘소 | 국립 신암 선열 공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북로71길 33[신암동 산27-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명(異名)은 김길남(金吉男)이다.
[활동 사항]
김두희(金斗熙)[1921~2000]는 1921년 1월 4일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후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교토[京都]의 리츠메이칸[立命館]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재학 중이던 1939년에는 학비 마련을 위해 소네자키[曾根]타일주식회사의 직공으로 일하였다. 직공으로 일하면서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 대우를 체험하고, 같은 직공으로 일하던 이수영(李秀濚), 양달성(梁達成), 신임휴(申任休) 등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인 민족부흥회(民族復興會)를 결성하였다. 회원들은 민족부흥회의 목적을 조선 독립으로 정하고, 개별 연구 및 상호 계몽을 통한 민족의식의 앙양과 함께 동포에 대한 차별 철폐 활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민족부흥회는 일제 경찰의 취체(取締)를 피하기 위해 표면상 평화회(平和會)라 명명하고, 일본 거주 조선인의 생활 개선과 구제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1940년 6월 중순까지 수십 차례의 회합을 가졌고, 소네자키타일주식회사 공장 등지에서 일본인으로부터 모별과 압제를 당하고 있는 조선인 직공들을 대상으로, 세계 각국의 독립운동 상황 등을 알리며 동지를 규합하였다.
당시 김두희는 교토 지역의 책임자가 되어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벌였고, 1940년 3월 무렵에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가 7월 16일 석방되었다. 석방 후에도 비밀 회합을 가지며 동지 규합 활동을 이어갔으나, 1940년 12월 28일 일제 경찰에게 비밀 결사 활동이 발각되며 다시 붙잡혔다. 이어 1941년 5월 5일 나고야[名古屋]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 집행 유예 5년을 언도받고 풀려났다. 2000년 2월 29일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북로71길 33[신암동 산27-1]의 국립 신암 선열 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1986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는 건국 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