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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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自滌 |
영어공식명칭 | Choe Jacheok |
이칭/별칭 | 최자섭(崔自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명환 |
[정의]
조선 전기 단종 복위 운동에 동참한 성주 출신의 충신.
[가계]
본관은 영천(永川).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법산 마을의 입향조(入鄕祖)인 최항경(崔恒慶)[1560~1638]의 종선조(從先祖)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판군기시사(判軍器寺事) 최일(崔壹)이다. 할아버지는 직제학(直提學) 최흥효(崔興孝)이고, 아버지는 최계성(崔繼性)이다.
[활동 사항]
최자척(崔自滌)[?~1457]의 처음 이름은 최자섭(崔自涉)이었다. 1457년(세조 3) 순흥부(順興府)에 안치(安置)되어 있던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1426~1457]가 순흥부사(順興府使) 이보흠(李甫欽)[?~1457]과 함께 단종의 복위(復位)를 도모할 때, 이보흠의 사위로서 격문(檄文)의 초고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공(功)을 바라던 관노(官奴)가 그것을 몰래 빼돌려 고변(告變)함으로써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금성 대군은 사사(賜死)되고 최자척도 이보흠과 함께 처형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458년(세조 4)에 세조가 계유정난(癸酉靖難) 및 단종 복위 운동 때 처형된 280명의 명단을 비단에 써서 동학사(東鶴寺)에 내려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하였는데, 이때 금성 대군 이유, 정종(鄭悰)[?~1461], 송현수(宋玹壽)[?~1457] 등과 함께 이름이 기재되었다. 1791년(정조 15)에는 의춘군(宜春君) 이우직(李友直)[1439~1454], 덕양군(德陽君) 이우량(李友諒)[?~1452], 참판(參判) 황보석(皇甫錫)[?~1453] 등 198명과 함께 장릉 배식단(莊陵配食壇)의 별단(別壇)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