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47 |
---|---|
한자 | 崔𨏈 |
영어공식명칭 | Choe Eun |
이칭/별칭 | 사행(士行),관봉(鸛峰),나광자(懶狂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명환 |
출생 시기/일시 | 1583년 - 최은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604년 - 최은 아버지 최항경을 따라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1633년 - 최은 사마시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최은 병자호란 때 아버지 최항경의 명으로 동생인 최린과 함께 고령의 의병소로 달려갔으나, 도중에 남한산성의 함락 소식을 듣고 애통해하며 귀향 |
몰년 시기/일시 | 1656년 - 최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82년 - 최은 오암서원에 배향 |
출생지 | 최은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법산 마을 |
거주|이주지 | 최은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법산 마을 |
수학|강학지 | 최은 수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신정리 258] |
묘소|단소 | 최은 묘소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 2리 |
사당|배향지 | 오암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영천 |
대표 관직|경력 | 생원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행(士行), 호는 관봉(鸛峰)·나광자(懶狂子).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최사철(崔師哲)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 최정(崔淨)[1528~?]이다. 아버지는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1560~1638]이며, 어머니는 참봉(參奉) 류경준(柳景濬)의 딸 풍산 류씨(豐山柳氏)이다. 부인은 현감(縣監) 권양(權瀁)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매와(梅窩)최린(崔轔)[1597~1644]이 동생이다.
[활동 사항]
최은(崔𨏈)[1583~1656]은 1583년(선조 16)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법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질과 용모가 뛰어났으며, 다른 아이들과 장난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찍이 광대가 노래 부르며 춤추는 곳을 지나갔는데,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성인께서 꾸짖으실 바’라고 말하였다. 이에 아버지 최항경이 크게 기뻐하며, 자라서 반드시 정인군자(正人君子)[마음이 바르면서 학식이 높고 덕행이 어진 사람]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광해군 때 시사(時事)가 날로 어그러지자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과거 응시를 그만둔 최은은,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뒤인 1633년(인조 11)이 되어서야 동생과 함께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간혹 축하 인사를 건네면, 크게 탄식하며 “장부의 사업은 여기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 말하였으니, 학문적 지향점이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동생 최린과 함께 고령(高靈)의 창의소(倡義所)로 달려갔으나, 도중에 남한산성의 함락 소식을 접하고선 애통해하며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내비쳤다. 이후 별호(別號)를 스스로 게으르다는 의미의 나광자(懶狂子)로 지었으며, 고향인 성주에서 강학 활동에 전념하다가 1656년(효종 7)에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최은은 동생 최린과 함께 아버지 최항경을 따라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배움의 뜻이 돈독하여 정구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 정구는 최은·최린 형제를 매우 신뢰하여, 예서(禮書)를 교정할 때마다 최항경에게 편지를 보내, 최은·최린 형제가 교정에 참여하도록 도움을 청하였다. 최은도 스승 정구를 매우 존숭하였으니, 일찍이 회연서원(檜淵書院)의 백매원(百梅園)을 지나다가 정구에 대한 사모의 마음을 이기지 못해 시를 지은 적도 있었다.
그는 스승이 배향된 천곡서원(川谷書院)과 회연서원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 힘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매번 근처의 선비들을 이끌고 두 서원을 왕래하며 강학 활동을 펼쳤다. 만년에는 법산(法山) 아래에 집을 짓고서 경전의 뜻을 외우고 연구했는데, 당시 함께 종유(從遊)했던 이들은 모두 이름난 현인들이었다. 문집으로 『관봉선생문집(鸛峰先生文集)』 1권 1책이 남아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 2리에 있으며, 아버지 최항경과 동생 최린의 묘소도 함께 있다.
[상훈과 추모]
1782년(정조 6)에 아버지 최항경 및 동생 최린과 함께 오암서원[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에 배향되었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고, 현손(玄孫)인 최서(崔瑞)[1710~?]가 유사(遺事)를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