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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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時杓 |
영어공식명칭 | Jang Sipyo |
이칭/별칭 | 장응표(張應杓),응칠(應七),운고(雲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정철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응표(張應杓), 자는 응칠(應七), 호는 운고(雲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금헌(噤軒) 장주(張鑄)이고 아버지는 장빈(張濱)이다. 어머니는 광주 이씨(廣州李氏)로 이관운(李觀運)의 딸이다. 생부(生父)는 장봉상(張鳳祥)이다. 부인은 청주 정씨(淸州鄭氏)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후손인 정완(鄭垸)의 딸이다. 장시윤(張時潤)의 종형이고 김규한(金奎漢)의 사돈이다. 장석신(張錫藎), 장석영(張錫英)이 그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장시표(張時杓)[1819~1894]는 1819년 인동부 진평리[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849년(헌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에 제수되고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1850]와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1850]을 지냈다. 1857년(철종 8)에 지평(持平), 1864년(고종 1) 장령(掌令), 부수찬(副修撰), 부교리(副校理), 장악원 정(掌樂院正)에 임명되어 경연에서 강의를 했다. 1865년에 자발적으로 현풍현감(玄風縣監)으로 내려갔다. 집의(執義)[1872]·교리(校理)[1873]·응교(應敎)[1873] 등을 역임했으며, 동부승지(同副承旨)[1874]를 여러 해 지냈다. 1880년 함경도의 북청현감(北淸縣監)을 지냈다. 그 후 병조참의(兵曹參議)를 거쳐 1886년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894년 형조참판(刑曹參判)을 역임했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운고집(雲皐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대흥산에 자리한 대흥사 뒤쪽에 위치한다. 장복추(張福樞)가 묘비명을 짓고, 곽종석(郭鍾錫)이 신도비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