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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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柱大 |
영어공식명칭 | I Judae |
이칭/별칭 | 이극(爾極),명암(冥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희대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이극(爾極), 호는 명암(冥菴). 할아버지는 창주(滄洲) 이창진(李昌鎭)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이해발(李海潑)이다. 어머니는 판관(判官) 윤명철(尹命哲)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고, 부인은 아주 신씨이다. 낙저(洛渚) 이주천(李柱天)과 이주우(李柱宇)·이주남(李柱南)·이주한(李柱漢)·이주백·이주숭(李柱嵩)은 형이다.
[활동 사항]
이주대(李柱大)[1689~1755]는 1689년(숙종 15) 경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 석전리[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石田里)]에서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형님에게 양육되었다. 문장에 재질이 있어 14~15세에 어른들을 따라 녹봉정사(鹿峰精舍)에서 경서의 뜻을 풀어 한 편의 글을 지었다. 천성이 방정하고 사려가 깊어 언행이 성현의 말씀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백불암(百弗巖) 최흥원(崔興遠) 등이 크게 칭찬하였다.
1723년(경종 3) 식년시에 생원 2등 2위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했다가,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문장은 꾸밈없이 명료했고, 지리산과 금오산을 오른 후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과 「유금오산록(遊金烏山錄)」을 지었다. 모헌(慕軒) 강필신(姜必愼), 기헌(奇軒) 강해(姜楷) 등과 학문으로 교유하였다.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배우려는 자들이 많이 찾아왔고, 제자 중에는 고암(古巖) 이태우(李泰宇)처럼 대과 급제자도 있었다. 1755년(영조 31)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명암문집(冥菴文集)』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노촌 마을 뒤[현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 산886]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