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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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仁任 |
영어공식명칭 | I Inim |
이칭/별칭 | 광평 부원군(廣平府院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고려 후기 성주가 본관인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 시조 이순유(李純由)의 1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 아전을 지낸 이장경(李長庚)이고, 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한 성산군(星山君) 이조년(李兆年)[1269~1343]이다. 아버지는 동지밀직(同知密直) 이포(李褒)[?~1373년]이다. 형은 검교시중(檢校侍中) 이인복(李仁復)이다. 동생은 판서(判書) 이인미(李仁美),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이인립(李仁立), 주부(注簿) 이인달(李仁達), 문하평리(門下評理) 이인민(李仁敏)이다. 아들은 대호군(大護軍) 이환(李瓛)과 고공좌랑(考功佐郞) 이민(李珉)이다. 사위는 조선에서 벼슬한 판승녕부사(判承寧府事) 강서(姜筮)와 상주목사(尙州牧使) 권집경(權執經)이다.
[활동 사항]
이인임(李仁任)[?~1388]은 성산군 이조년의 손자이다. 이로 인한 음서(蔭敍)[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 또는 지위가 높은 관리의 자손을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로 전객시승(典客寺丞)이 되어 관직에 진출하였다. 공민왕과 우왕 대에 중앙에서 크게 활동하였다. 1358년(공민왕 7)에 좌부승선(左副承宣)이 되었다. 중국의 농민 반란군인 홍건적이 1359년(공민왕 8)부터 1362년(공민왕 11) 사이에 고려를 침략해 왔다. 이때 이인임은 서경존무사로서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다. 1363년(공민왕 12)에 평양윤(平壤尹)에 임명되었고, 1365년(공민왕 14)에 삼사우사(三司右使)·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었다. 이처럼 이인임의 관직은 승승장구하며 1368년(공민왕 17)에 좌시중(左侍中)에 임명되었고, 1374년(공민왕 23)에 수시중(守侍中)에 오르며 광평 부원군(廣平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이와 같이 이인임은 공민왕(恭愍王)의 총애를 받고 고위 관직에 연이어 머물렀다.
공민왕이 피살되자 이인임은 우왕(禑王)을 옹립하는 데 앞장섰다. 이에 우왕의 총애를 받아 계속해서 고위직에 있었다. 이인임은 1381년(우왕 7)에 최고위직인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며 권력의 정상에 있었다. 그러다가 최영(崔瑩)·이성계(李成桂) 등에 의해 중앙 정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1388년(우왕 14)에 본관인 경산부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한편 명나라 법전인 『대명회전(大明會典)』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이인임의 아들로 잘못 표기하였다. 이 기록으로 인하여 조선 정부는 수정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이 기록 수정에 대한 외교적 노력은 조선 전기에 조정의 큰 우환거리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