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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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雲相 |
영어공식명칭 | I Unsang |
이칭/별칭 | 여림(汝霖),담와(澹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갑곤 |
출생 시기/일시 | 1829년 - 이운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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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81년 - 이운상 만인소를 올림 |
몰년 시기/일시 | 1891년 - 이운상 사망 |
출생지 | 이운상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 마을 |
묘소|단소 | 이운상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字)는 여림(汝霖), 호는 담와(澹窩). 증조할아버지는 이민검(李敏儉), 할아버지는 생원 이형진(李亨鎭), 아버지는 진사 이원호(李源祜)이고, 어머니는 의성(義城) 김씨로 김종옥(金宗沃)의 딸이다. 둘째아버지는 응와(凝窩) 이원조(李源朝)이고, 형은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이다. 부인은 박영증(朴永增)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활동 사항]
이운상(李雲相)[1829~1891]은 1829년(순조 29)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 마을에서 태어났고, 백형(伯兄) 한주 이진상에게 처음 글을 배웠다. 향시(鄕試)에는 여러 차례 합격했으나, 대과에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중부(仲父) 이원조는 ‘담와(澹窩)’라는 두 글자를 손수 써서 주며 온화하고 깨끗한 성품으로 살아가라고 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이 위중하자 살신으로 구완했고,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삼년상을 치렀다.
생업에 관심을 두지 않아 살림이 궁핍해지게 되면서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포리에서 잠시 정화리[현 선남면 관화리]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자식에게 물려주고 다시 돌아와 학문에 몰두했고, 산수를 유람하면서 장녹추(張祿樞)·김태응(金台應)·여영회(呂英會) 등과 교유하였다. 1881년 영남의 인사들과 함께 만인소(萬人疏)를 올렸다. 문장이 뛰어났으나 향리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1891년(고종 28)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담와집(澹窩集)』 4권 2책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관동(寬洞) 불당곡(佛堂谷) 묘좌(卯坐)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