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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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承休 |
영어공식명칭 | I Seunghyu |
이칭/별칭 | 휴휴(休休),동안거사(動安居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고려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이자 가리 이씨의 시조.
[가계]
자는 휴휴(休休), 호(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 고려 시대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 가리현(加利縣) 출신이다. 가리현이 본관이 되면서 가리 이씨(加利李氏)의 시조가 되었다. 가리 이씨는 성주 지역을 본으로 하고 있는 6개의 이씨, 즉 벽진 이씨, 성주 이씨, 성산 이씨, 광평 이씨, 경산 이씨, 가리 이씨를 지칭하는 성주 6리(李) 중 하나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외가는 삼척현[현 강원도 삼척]으로 추정된다. 아들 이임종(李林宗)과 이연종(李衍宗)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높았다. 이임종은 언부산랑(讞部散郞)에 이르렀으며, 청렴하고, 유능했고, 관직에서 물러 나와 어머니를 잘 봉양하였다. 이연종도 과거에 급제하고 오래도록 관직에 있었다.
[활동 사항]
이승휴(李承休)[1224~1300]는 1224년(고려 고종 11)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고, 1252년(고종 39) 4월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1253년 삼척현에 거주하는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몽고의 침략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삼척현 두타산(頭陀山) 구동(龜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모셨다. 1264년(원종 5)에 경흥부 서기(慶興府書記)에 보임되었다가, 내직에 들어가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가 되었다.
1274년에 원종이 죽자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가서 부음을 알렸고, 당시 원나라에 있던 세자[충렬왕]가 몽고 옷을 입고 장례를 치를까 염려하여 상복을 고려식으로 입도록 하였다. 충렬왕 때는 양광도와 충청도의 안렴사(按廉使)가 되어 탐관오리 7명의 죄상을 밝히고 가산을 몰수했다가, 원성을 사서 동주부사(東州副使)로 좌천되었다.
이때부터 스스로 동안거사(動安居士)라 하였다. 얼마 뒤에 충렬왕이 불러 전중시사(殿中寺史)가 되었으나 10개 조로 간언하다가 파직되었고, 다시 관직에 나왔다가 결국 1298년 8월에 밀직부사 감찰대부 사림학사 승지(密直副使監察大夫詞林學士承旨)로 벼슬을 마쳤다. 감찰대부(監察大夫)는 감찰사(監察司)의 대부(大夫)로서 정3품직이며, 감찰사는 정사를 논하고 백관(百官)을 감찰하면서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 일을 관장하였다. 1300년(충렬왕 26)에 77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1287년에 칠언고시(七言古詩)로 우리 민족이 천손인 단군(檀君)의 후손임을 나타내고 단군신화를 우리 역사 속에 포함시킨 한문 서사시 『제왕운기(帝王韻紀)』, 불전(佛典) 목록으로 추정되는 『내전록(內典錄)』, 아들 이연종이 편찬한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이 있다.『내전록(內典錄)』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