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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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秉瑩 |
영어공식명칭 | I Byeongyeong |
이칭/별칭 | 성실(聖實),천관(川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갑곤 |
출생 시기/일시 | 1784년 - 이병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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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25년 - 이병영 식년시에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834년 - 이병영 사헌부 지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837년 6월 - 이병영 이조정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841년 - 이병영 사헌부 장령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851년 5월 24일 - 이병영 사망 |
출생지 | 이병영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
묘소|단소 | 이병영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
성격 | 문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경산(京山) |
대표 관직 | 사헌부 장령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경산(京山). 자(字)는 성실(聖實), 호는 천관(川觀). 증조할아버지는 이덕표(李德標)이고, 할아버지는 이광각(李光珏)이다. 아버지는 검암(儉巖) 이익수(李益壽)이고, 어머니는 옥산(玉山) 장재전(張在田)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병영(李秉瑩)[1784~1851]은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하늘에 기도하고 대변을 맛보았으며, 상을 당하자 몸을 상할 정도로 슬퍼하였다고 한다. 강고(江皐) 유심춘(柳尋春)의 문인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시 병과 4위로 합격한 후, 전적(典籍)과 정언(正言) 등을 거쳐 1834년(순조 34)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그해 4월 혼례(婚禮)의 사치와 조복 및 관복의 간소화에 대한 상소를 올렸으나 좌의정 심상규(沈象奎)가 반대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37년(헌종 3) 6월 이조정랑(吏曹正郞)에 제수되었고, 12월에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으로 좌천되었지만 백성의 폐단과 마정(馬政)을 철저히 시정하였다. 이듬해 성주로 돌아와서 ‘천관’이라는 편액을 걸고 강학에 몰두하였다. 1841년(헌종 7) 사헌부 장령(掌令)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향리의 학자 이만운(李萬運), 정동박(鄭東璞), 이우세(李禹世) 등과 교유하였다. 만년에 학자들과 더불어 도와 예를 강론하여 성취한 것이 많았다. 1851년(철종 2) 5월 24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천관집(川觀集)』 4권 2책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성주군 명곡리[현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홈실] 동남향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