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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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堅基 |
영어공식명칭 | I Gyeongi |
이칭/별칭 | 이견기(李堅起),필휴(匹休),남정(楠亭),안성(安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조선 전기 성주가 본관인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 자는 필휴(匹休), 호는 남정(楠亭). 시조 이순유(李純由)의 17세손이다. 원래 조상이 고려 시대에 대대로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향리를 지냈다. 그 후 성주 호장이던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의 아들 대부터 가계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1269~1343]은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에서 명성을 얻음으로써 가문의 격을 높였고, 「다정가(多情歌)」의 작자로 유명하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포(李褒)[?~1373년]이고, 할아버지는 고려 말 시중을 지낸 이인복(李仁復)과 이인임(李仁任) 형제의 동생 이인민(李仁敏)이다. 아버지는 이수(李穗)이고,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洪氏) 홍상재(洪尙載)의 딸이다. 시호(諡號)는 안성(安成)이다.
[활동 사항]
이견기(李堅基, 李堅起)[1384~1455]는 1419년(세종 1) 증광시(增廣試) 동진사(同進士) 23위로 급제한 후 우정언(右正言)·지평(持平)·동부승지(同副承旨)·우부승지(右副承旨)·좌부승지(左副承旨)·우승지(右承旨)·좌승지(左承旨) 등을 거쳤다. 세종, 문종, 단종이 중용하여 충청도관찰사, 예문관 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447년 호조판서로 임명되었다. 1446년에 성절사(聖節使)로 주문사(奏聞使) 김하(金何)와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고, 1450년(문종 즉위년)에 사은사(謝恩使)로 북경에 다녀왔다. 72세 때 병으로 중추원사(中樞院使)로 옮기어 은퇴한 후 마전(麻田)에 살았다. 1455년(단종 3) 1월에 세상을 뜨니, 단종은 이틀 동안 조회를 폐하고 널, 덧널과 종이 100권을 부의(賻儀)로 하사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주목조에 덕망이 높은 인물로 불리었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