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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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聖擧 |
영어공식명칭 | Yeo Seonggeo |
이칭/별칭 | 자우(子遇),나은(蘿隱),나산만은(蘿山晩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철 |
출생 시기/일시 | 1649년 - 여성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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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81년 - 여성거 사마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83년 - 여성거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93년 - 여성거 사간원 정언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94년 - 여성거 금산군수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700년 - 여성거 사망 |
출생지 | 여성거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
거주|이주지 | 여성거 은거지 - 경상북도 고령군 |
부임|활동지 | 여성거 부임지 - 충청남도 금산 |
묘소|단소 | 여성거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대표 관직 | 금산군수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개설]
여성거(呂聖擧)[1649~1700]는 문과 급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나 40대 후반에 큰아들이 사망하자 충격을 받고 낙향하여 독서하며 생애를 마쳤다.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자우(子遇), 호는 나은(蘿隱). 7대조가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이다. 아버지는 사후에 승지(承旨)를 추증 받은 여대화(呂大和)이며, 어머니는 찰방(察訪) 김경장(金慶長)의 딸 순천 김씨(順天金氏)이다. 여반(呂攀)이 아들인데, 영조(英祖)에게 크게 신임을 받아서 선전관(宣傳官), 우후(虞候), 보성군수, 곽산군수, 훈련첨정(訓鍊僉正), 내승(內乘), 훈련부정(訓鍊副正), 순천영장(順天營將), 내금장(內禁將), 용천부사, 갑산부사 등을 차례로 지냈다.
[활동 사항]
여성거는 성주 수촌(樹邨)[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681년(숙종 7) 사마시에 합격하고, 168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전적(典籍),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숙종 20) 6월 금산군수로 부임하였다가 얼마 안 되어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여성거가 47세 되던 즈음에 큰아들이 사망하였다. 여성거는 충격을 받고 운나산(雲蘿山)에 들어가 조그마한 집을 짓고 ‘나산만은(蘿山晩隱)’이라 자호(自號)하고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 등을 읽으며 일생을 마쳤다.
관직 생활 중 인현 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어 평인의 신분으로 별궁에 거처하고 있을 때 다른 신하들과 달리 그 앞을 지날 때 여성거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신하의 예를 다하였고, 이에 감격한 인현 왕후가 특별히 이름과 직책을 기록하였다고 전한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2권 1책의 『나은선생문집(蘿隱先生文集)』이 있는데, 내용 중 「진시폐소(陳時弊疏)」에서 당시 조정의 상황을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리 와룡(臥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