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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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命純 |
영어공식명칭 | Bae Myeongsun |
이칭/별칭 | 수초(遂初),충숙(忠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우인수 |
출생 시기/일시 | 1597년 - 배명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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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배명순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27년 - 배명순 선전관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배명순 사망 |
출생지 | 배명순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
묘소|단소 | 배명순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계상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대표 관직 | 함경도 병마우후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수초(遂初). 할아버지는 효숙공(孝肅公) 배흥립(裵興立)이고, 아버지는 배시망(裵時望)이며, 어머니는 주부 신천기(申天記)의 딸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활동 사항]
배명순(裵命純)[1597~1637]은 1597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용모가 남다르고 기골이 장대하여 장차 후일에 이름을 남길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를 받았다.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인조가 강화도에서 위사(衛士)를 모집할 때 응모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이어 군사 300명을 거느리고 황해도 안릉(安陵)에서 후금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로 승진하였다. 이어 도총부 경력(都摠府經歷)과 감찰(監察),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고, 외직인 보성군수로 나아가 치적을 쌓았다. 그 뒤 당상관에 올라 함경도 병마우후(咸鏡道兵馬虞候), 덕원도호부사(德源都護府使)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영장(營將)으로 남도절도사(南道節度使)를 따라 근왕병(勤王兵)으로 참가하여 경기도 양근에 이르러 결사 각오로 청군과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주장이 허락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곧 화의가 성립되었다. 왕이 도성으로 돌아오자 모든 장수들은 군사를 파하고 돌아갔으나 배명순은 철수하는 청나라 군사와 철령(鐵嶺)에서 맞붙었다. 그리고 퇴각하는 청나라 군사의 뒤를 추격하여 안변의 남산역(南山驛)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적을 얕본 주장의 무모한 명령에 따라 밤에 강행군을 하던 중, 복병의 기습을 받고 선봉에서 싸우다가 41세의 나이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계상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덕원도호부에 추사비(追思碑)가 세워졌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묘갈명을 지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 성산 배씨 가문 3대가 받은 정려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배흥립 삼대 삼강 정려각’이 있다. 배흥립 삼대 삼강 정려각은 남편을 따라 죽음을 택한 열녀 경주 김씨(慶州金氏), 경주 김씨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배흥립, 병자호란 때 끝까지 적과 맞서 싸운 배흥립의 손자 배명순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