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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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翰國 |
영어공식명칭 | Do Hanguk |
이칭/별칭 | 자번(子藩),오월당(梧月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출생 시기/일시 | 1614년 - 도한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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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82년 - 도한국 사망 |
출생지 | 도한국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
묘소|단소 | 도한국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주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字)는 자번(子藩), 호는 오월당(梧月堂). 증조할아버지는 훈도(訓導) 도태보(都台輔)이고, 할아버지는 참의를 지낸 도몽기(都夢麒)이다. 아버지는 도세옹(都世雍)이고, 어머니는 성산 여씨(星山呂氏) 주부(主簿) 여윤공(呂允恭)의 손녀이다. 또 다른 자료인 증손자 도명응(都命應)이 쓴 「실기(實記)」에 따르면, 어머니는 성산 여씨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의 손녀이자 여윤공(呂允恭)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인은 인동 장씨(仁同張氏) 증(贈) 이조판서 장현도(張顯道)의 손녀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도한국(都翰國)[1614~1682]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에게 수학하고 성주 출신 운암(雲巖) 김주(金輳)[1564~1636]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평생 관직을 멀리하고 학가재(學稼齋) 이주(李𦁖)[1599~1669], 서암(栖巖) 여효증(呂孝曾)[1604~1679], 남파(南坡) 장학(張澩)[1614~1669], 만회정(晩悔亭) 송세빈(宋世彬), 삼노당(三老堂) 정우(鄭堣)[1609~1687] 등과 교유하며 성리학에 침잠하였다. 효제(孝弟)를 준칙으로 경모재(敬慕齋)를 지어 종신토록 근검한 학문적 자세를 취하였다. 한가할 때면 서실을 지어 벽오(碧梧) 한 그루를 심고, 달이 비출 때마다 소요하며 자적하였다. 오월당이라는 호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학문과 저술]
가장(家狀)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가 썼고, 묘갈명은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1825~1912]가 남겼다. 도한국은 『오월당문집(梧月堂文集)』 2권 1책을 남겼다.
[묘소]
묘는 성주 명암방(明巖坊)[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작소동(作所洞) 남남동을 바라보는 곳에 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