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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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吉敷 |
영어공식명칭 | Do Gilbu |
이칭/별칭 | 성산 부원군(星山府院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진갑곤 |
[정의]
고려 후기 성주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증조할아버지는 종부판서(宗簿判書) 도유덕(都有德)이고, 할아버지는 동양창 판관(東陽倉判官) 도효안(都孝安)이다. 아버지는 문하시중이자 칠곡 부원군(漆谷府院君)인 도홍정(都洪正)이고, 어머니는 조봉대부(朝奉大夫) 비순위 대호군(備巡衛大護軍) 박수견(朴守堅)의 딸 고령 박씨(高靈朴氏)이다. 부인은 방어사(防禦使) 차종로(車宗老)의 딸 연안 차씨(延安車氏)와 부만호(副萬戶) 권가봉(權可封)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찬성사를 지낸 도응(都膺)이 아들이다.
[활동 사항]
도길부(都吉敷)[?~1388]는 경산부(京山府) 팔거현(八莒縣)[현 경상북도 칠곡군] 사람이다. 1380년(우왕 6) 8월 왜구가 침입하여 전라도 전 지역을 유린하며 약탈을 자행하자 이성계(李成桂), 변안렬(邊安烈) 등과 함께 원수(元帥)로서 명을 받고 나아가 남원 운봉면 황산(荒山) 기슭에서 세 번의 대접전 끝에 적을 모두 섬멸하였다. 황산 대첩 후 우왕(禑王)이 전공을 치하하며 금은을 하사하였으나 도길부는 적을 죽이는 것은 장수의 직분일 뿐이라며 끝내 사양하였다.
1382년(우왕 8) 한양 천도 때 왕을 호종하였고, 이어 중용되어 대언(代言)이 되었으며, 이듬해 정방 제조(政房提調)가 되었다. 1384년(우왕 10) 우왕이 봉가이(鳳加伊)를 총애하자 숙비(淑妃) 용덕(龍德)이 시샘하여, 평리(評理) 도길부가 봉가이와 통정하였다고 참소하여 서북면 도체찰사(西北面都體察使)로 좌천되었다. 1388년(우왕 14)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으나, 최영(崔瑩)과 이성계가 이인임(李仁任)·임견미(林堅味) 일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소위 무진 참화(戊辰慘禍) 때 족당(族黨)으로 몰려 함께 죽음을 당하고 가산은 몰수되었다. 이때 도길부의 부인도 고문을 당하던 중 옥중에서 죽었고, 아들 도유(都兪)[도응]는 최영과 친한 찬성사 우인렬(禹仁烈)의 사위여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상훈과 추모]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문하첨의찬성사(門下僉議贊成事) 성산 부원군(星山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577년(선조 10)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운봉 대첩비(雲峯大捷碑)가 건립되었다. 1667년(현종 8) 남원에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1825년(순조 25) 서울과 삼남의 선비들이 운봉의 황산 아래 서원을 세우고 도길부를 배향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