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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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關石 |
영어공식명칭 | Gim Gwanseok |
이칭/별칭 | 사우당(四友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우인수 |
출생 시기/일시 | 1505년 - 김관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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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42년 - 김관석 사망 |
거주|이주지 | 김관석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윤동 마을 |
묘소|단소 | 김관석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
성격 | 학자|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의성 |
[정의]
조선 전기 성주 윤동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학자이자 문인.
[가계]
본관은 의성. 호는 사우당(四友堂). 조선 초에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를 지낸 김용초(金用超)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윤적(金允迪)이고, 아들은 김담수(金聃壽)[1535~1603]이다.
[활동 사항]
김관석(金關石)[1505~1542]은 실천이 독실하고 학문이 날로 빛났다. 고을에서 배우기를 청하는 자들이 많아져서 집의 중문(中門) 동쪽에 재사(齋舍)를 짓고 공부를 가르쳤다. 학문이 뛰어나 많은 제자를 두었다. 『독서명(讀書銘)』과 『문도편(聞道篇)』을 지었다. 조정(朝廷)에서 김관석의 어짊을 듣고 제릉 참봉(齊陵參奉)을 제수하였으나, 영광을 바칠 수 있는 어버이가 살아 있지 않는다며 나가지 않았다. 자손에게는 관직명을 쓰지 말도록 경계하였다. 김관석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윤동 마을 의성 김씨(義城金氏) 입향조(入鄕祖)이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토곡(土谷) 금차산(金釵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종로(鄭宗魯)가 묘갈명을 짓고, 조호연(趙虎然)이 행장을 지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덕천서원(德泉書院)에 향사되었다. 덕천서원은 1794년(정조 18)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관석·김천택(金天澤)·김주(金輳)·김즙(金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김관석을 주벽(主壁)으로 4인의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 및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다가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