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47 |
---|---|
한자 | 文武官人 |
영어공식명칭 | Civil Servants And Military Officer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세욱 |
[정의]
성주 지역 출신이거나 성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인이나 무관.
[개설]
『성주군지』에 이름을 올린 성주 지역의 문무 관인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려 시대
고려 시대 성주 지역 출신이거나 성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무 관인으로 총 82명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생몰년이 확인되는 인물들은 26명으로, 김승득(金承得)[?~1377], 김용초(金用超)[?~1406], 색상(索湘)[?~927], 신예(辛裔)[?~1355], 이견간(李堅幹)[?~1330], 이군상(李君常)[?~1353], 이극송(李克松)[1202~1274], 이대(李玳)[?~1343], 이만년(李萬年)[1263~?], 이백년(李百年)[1252~?], 이숭인(李崇仁)[1347~1392], 이승경(李承慶)[1290~1360], 이승휴(李承休)[1224~1300], 이억년(李億年)[1266~?], 이원구(李元具)[1293~?], 이인기(李麟起)[1272~?], 이인립(李仁立)[1333~1387], 이인임(李仁任)[1312~1389], 이장경(李長庚)[1214~1259], 이조년(李兆年)[1269~1343], 이존성(李存性)[1358~1388], 이천년(李千年)[1256~?], 이총언(李悤言)[858~938], 이포(李褒)[1287~1373], 이희경(李希慶)[1343~1377], 정사도(鄭思道)[1318~1397] 등이다.
2. 조선 시대
조선 시대 성주 지역 출신이거나 성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문무 관인으로 총 645명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생몰년이 확인되는 인물들은 124명으로, 이들은 대부분 개인 문집을 남기고 있으며, 그만큼 내외에서 많이 알려진 인물임을 방증해 준다. 당연히 사후 증직된 경우는 제외했다. 권용(權容)[1509~1577], 권유검(權有儉)[1421~1463], 권응정(權應挺)[1498~1564], 권응창(權應昌)[1500~1568], 권희맹(權希孟)[1475~1525], 김동환(金東煥)[1845~1899], 김맹성(金孟性)[1437~1487], 김시(金市)[1490~1561], 김우굉(金宇宏)[1524~1590], 김우옹(金宇顒)[1540~1603], 김우홍(金宇弘)[1522~1590], 김응소(金應素)[1742~1803], 김중남(金重南)[1636~1698], 김희참(金希參)[1507~1560], 도영하(都永夏)[1655~1734], 도우형(都宇亨)[1794~1843], 도응운(都應雲)[1558~?], 도처형(都處亨)[1634~1720], 도형(都衡)[1480~1547], 도부(柳溥)[1440~1502], 유예원(柳禮源)[1470~1537], 유한경(柳漢卿)[1420~1486], 문관도(文貫道)[1550~1605], 박영서(朴永緖)[1579~1624], 박원형(朴元亨)[1411~1469], 박윤경(朴閏卿)[1479~1527], 박이장(朴而章)[1540~1622], 배건(裵楗)[1555~1592], 배문덕(裵德文)[1525~1602], 배명순(裵命純)[1597~1637], 배상유(裵尙瑜)[1610~1686], 배상호(裵尙虎)[1594~1632], 배설(裵楔)[1551~1599], 배시량(裵時亮)[1604~1657], 배곤(裵紳)[1520~1573], 배응경(裵應褧)[1544~1602], 배정휘(裵正徽)[1645~1709], 배현복(裵玄福)[1552~1592], 배흥립(裵興立)[1546~1608], 백민욱(白敏郁)[1594~1637], 백사룡(白師龍)[1594~1637], 백응상(白應祥)[1565~?], 백추(白鶖)[1535~1594], 손인감(孫仁甲)[?~1592], 송광계(宋光啓)[1566~1592], 송광범(宋光範)[1564~1635], 송광정(宋光廷)[1556~1607], 송명흠(宋明欽)[1705~1768], 송영기(宋永基)[1652~1736], 송태기(宋泰基)[1655~1733], 송화후(宋火厚)[1646~1702], 송희규(宋希奎)[1494~1558], 여효증(呂孝曾)[1604~1679], 여희림(呂希臨)[1481~1553], 오건(吳健)[1521~1574], 유익명(兪益明)[?~1455], 이건지(李建之)[1357~1415], 이견기(李堅基)[1384~1455], 이규문(李奎文)[1562~?], 이담명(李聃命)[1646~1701], 이도장(李道長)[1603~1644], 이륜(李綸)[1597~1671], 이말정(李末丁)[1422~1474], 이맹전(李孟專)[1392~1480], 이문건(李文楗)[1494~1567], 이민실(李敏實)[1772~1840], 이발(李潑)[1372~1426], 이병영(李秉瑩)[1784~1851], 이병흠(李秉欽)[1804~1846], 이사룡(李士龍)[1612~1640], 이사후(李師厚)[1388~1435], 이상급(李尙伋)[1571~1637], 이상길(李尙吉)[1556~1637], 이상일(李尙逸)[1600~1674], 이서(李𥳕)[1566~1651], 이석문(李碩文)[1713~1773], 이성순(李性純)[1709~1790], 이수장(李秀場)[1476~1543], 이수제(李秀堤)[1469~?], 이시함(李時馠)[1575~1660], 이안(李晏)[1445~1503], 이약동(李約東)[1416~1493], 이언영(李彦英)[1568~1639], 이엽(李曄)[1442~?], 이영(李縈)[1614~1665], 이우(李佑)[1476~1516], 이원정(李元禎)[1622~1680], 이원조(李源祚)[1792~1871], 이유(李維)[1495~?], 이윤우(李潤雨)[1569~1634], 이장곤(李長坤)[1474~?], 이정녕(李正寧)[1411~1455], 이정현(李廷賢)[1587~1612], 이종인(李宗仁)[1397~1455], 이지달(李志達)[1845~1917], 이지화(李之華)[1588~1666], 이직(李稷)[1362~1432], 이창국(李昌國)[1541~1593], 이천봉(李天封)[1567~1634], 이천증(李天增)[1561~1631], 이철균(李鐵均)[1450~1514], 이철모(李澈模)[1817~1886], 이충건(李忠建)[1491~1521], 이충민(李忠民)[1588~1662], 이취신(李就新)[1668~1745], 이해진(李海鎭)[1727~1777], 이형제(李亨禔)[1631~1709], 이형조(李亨祚)[1618~1693], 이형천(李亨千)[1621~1665], 이호성(李好誠)[1397~1467], 이후(李厚)[1377~1429], 이흥문(李興門)[1380~1455], 장무선(張茂先)[1646~1681], 장무행(張茂行)[1649~1708], 장응일(張應一)[1599~1676], 전룡(全龍)[1559~?], 정곤수(鄭崑壽)[1538~1602], 정구(鄭逑)[1543~1620], 정시(鄭蓍)[1768~1811], 정장(鄭樟)[1569~1614], 정종(鄭種)[?~1476], 제말(諸沫)[1543~1592], 제홍록(諸弘祿)[1558~1597], 탁신(卓愼)[1367~1426] 등이다.
조선 시대에만 총 645명에 달하는 문무 관인을 배출했다는 점은 다른 군 단위 지역과 비교하여 월등히 많은 수치이다. 여기에 벼슬하지는 않았지만, 덕망, 학행, 문망(文望)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까지 더하면, 1천여 명이 훨씬 넘는 수치이다. 이는 성주 지역이 영남 유림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성주, 성산, 벽진, 경산(京山)[성주]을 관향으로 하는 인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