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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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同張氏 |
영어공식명칭 | Indong Jang Clan |
이칭/별칭 | 옥산 장씨(玉山張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나 |
본관 | 인동 - 경상북도 구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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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가곡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가곡마을 |
성씨 시조 | 장금용 |
입향 시조 | 장봉한 |
[정의]
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봉한을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인동 장씨(仁同張氏)의 시조는 장금용(張金用)이다. 장금용은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했고, 아들 장선(張善)도 고려 문종 때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을 지냈다. 인동 장씨는 시조부터 11대까지 인동[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지역]에서 세거했고, 봉상파(鳳顙派)를 비롯한 5개 파로 나뉜다. 봉상파의 파조는 중종 때의 학자인 18세손 죽정(竹亭) 장잠(張潛)이다. 경상북도 성주에 거주하는 인동 장씨는 봉상파 중 장잠의 첫째 아들 장곤의 다섯째 아들인 장봉한(張鳳翰)의 후손들이며, 벽진면 봉계리 가곡에서 400여 년간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장봉한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서 활동하였다. 장봉한의 형인 장용한(張龍翰)의 후손들 중 일부는 성주의 선남면 익곡과 대가면 장전에 살고 있다.
[입향 경위]
입향조인 장봉한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조선을 괴롭히던 성주 지역의 왜적과 그 앞잡이 여러 명을 사로잡았다. 장봉한의 이런 의병 활동이 인동 장씨가 성주의 벽진면 가곡촌에 거주하는 주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현재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가곡(家谷)에 400여 년간 세거해 온 인동 장씨의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452에 계신재(繼愼齋)가 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개옹(㝏翁) 장봉한이 1640년(인조 18)에 후학 양성을 위해 ‘구지재(求志齋)’를 ‘계신재’로 편액(扁額)을 고쳐 단 후, 유생들의 강학 장소로 이용한 건물이다. 이후에는 장봉한과 아들 장이유(張以兪)의 학덕을 추모하는 재사(齋舍) 및 후손들의 종회당(宗會堂)으로 이용하였다. 2006년 경상북도와 성주군의 지원을 받아 중수하였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중앙 2칸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 각 1칸씩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이다. 온돌방 앞에는 쪽마루를 놓아 대청과 연결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