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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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冶城宋氏 |
영어공식명칭 | Yaseong Song Clan |
이칭/별칭 | 야로 송씨(冶爐宋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고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나 |
본관 | 야성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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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송천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고산정마을 |
성씨 시조 | 송맹영 |
입향 시조 | 송구 |
[정의]
송맹영을 시조로 하고, 송구를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야성 송씨(冶城宋氏)의 시조는 고려 목종 때 간의대부(諫議大夫) 총부의랑(摠部議郞)을 지낸 송맹영(宋孟英)이다. 송맹영이 나라에 세운 공으로 야성군(冶城君)에 봉군되어 경상남도 합천의 야로(冶爐) 지역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 야성을 본관으로 하였다. 경상북도 성주 지역 야성 송씨의 입향조는 고려 충목왕 때 경기 감사를 지낸 10세손인 송구(宋構)이다. 송구가 영남 지방에 재상어사(災傷御使)로 파견되어 성주군 초전면을 지나다가 문덕리 송천(松川)에 터전을 마련하면서, 야성 송씨는 성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송구의 할머니가 성주의 농서 이씨(隴西李氏), 어머니가 성주 배씨(星州裵氏)였고, 계속해서 성주의 유력한 성씨들과 혼인 관계를 이어가며 성주에 세거하는 성씨가 되었다.
이후 야성 송씨는 13세손 송수겸(宋守謙)의 아들 대부터 다섯 파로 분파되었고, 이중 송소(宋紹)의 직장공파(直長公派)가 경상북도 성주와 칠곡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송소는 송방현(宋邦賢)이라는 아들을 두었고, 송방현에게는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은 송덕규(宋德奎)이고, 그 5대손인 송세빈(宋世彬)의 후손들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송천에 살았다. 셋째 아들은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인데,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고산정(高山亭) 마을에 종가가 있다.
[입향 경위]
시조 송맹영의 10세손인 입향조 송구가 성주 초전을 지나다가 지세가 마음에 들어 머물게 되면서 정착하게 되었다.
[현황]
2010년 6월 말을 기준으로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야성 송씨 80가구가 살고 있는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로 257-105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인 성주 추원당(星州追遠堂)이 있다. 1656년(효종 7)에 처음 창건되었고, 야성 송씨의 성주 입향조인 송구를 비롯한 송길창(宋吉昌), 송천우(宋千祐), 송수겸 등 야성 송씨의 여러 선조의 묘제(墓祭)를 목적으로 건립된 문중 재사(門中齋舍)이다. 건물은 강당과 대문채 및 관리사, 고직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