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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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山李氏 |
영어공식명칭 | Seongsan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나 |
본관 | 성주 - 경상북도 성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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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정곡 |
성씨 시조 | 이능일 |
입향 시조 | 이능일 |
[정의]
이능일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성산 이씨(星山李氏)는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능일은 원래 이름이 능(能) 또는 능필(能弼)이었다가, 고려 태조가 삼한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는 뜻으로 통일을 상징하는 ‘일(一)’ 자를 내려 능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짐에 따라 성산 이씨가 되었다. 성산 이씨는 이능일이 고려 태조 왕건의 딸인 정순궁주(淨順宮主)와 혼인하여 사위가 됨으로써 지역적인 기반을 확실히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성산 이씨 가문은 처음에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거주하다가, 5세손 이견수(李堅守) 때 세거지를 벽진면 봉계리 정곡으로 옮겼다. 이후 이견수의 장남 이광(李匡)의 후손이 인주공파(仁州公派), 김산공파(金山公派), 정언공파(正言公派), 봉익공파(奉翊公派)로 나뉘었고, 둘째 아들 이직(李直)의 후손은 기국공파(杞菊公派)가 되었다. 김산공파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화죽리 죽곡 등에 거주했고, 정언공파 이우(李友)와 후손들은 월항면 대산리 한개 마을에 세거하였다. 한개 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의 양동 마을, 안동의 하회 마을과 함께 영남의 3대 민속 마을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후기 공조판서를 지낸 이원조(李源祚)[1792~1871]와 이원조의 조카인 이진상(李震相)[1818~1886] 등이 있다. 이원조는 자가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이다. 1809년(순조 9) 문과에 급제했고, 대사간, 승지, 공조판서 등에 올랐다. 제주목사로 재직 중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와 교유했고, 『탐라집(耽羅誌)』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진상은 자가 여주(汝雷), 호는 한주(寒洲)이다. 성리학에서 이황(李滉)[1501~1570]의 주리론(主理論)을 따랐고, 이현일(李玄逸), 이상정(李象靖)의 학문과 사상을 이었다. 저서로는 『이학종요(理學綜要)』, 『사례집요(四禮輯要)』 등이 있고, 곽종석(郭鍾錫)·허유(許愈)·장석영(張錫英)·이두훈(李斗勳)·김진호(金鎭祜) 등의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입향 경위]
시조인 이능일이 신라 말, 당시 본피현(本彼縣)으로 불린 성주를 다스리던 호족이었고, 고려 태조를 도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었기 때문에, 성주에 계속 거주할 수 있었다.
[현황]
2010년 6월 말 기준으로 경상북도 성주의 성산 이씨는 선남면 동암 1리에 138호, 용암면 대봉리 봉산 마을에 34호, 월항면 대산 1리와 안포 4리에 168호가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시조인 이능일을 모신 경원사(景源祠)가 있다. 인조 때의 무사인 이사룡(李士龍)을 모신 충절사(忠節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