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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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亨齋先生詩集 |
이칭/별칭 | 『형재시집』,『형재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미진 |
간행 시기/일시 | 1618년 - 『형재선생시집』 간행[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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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675년 - 『형재선생시집』 간행[1675] |
간행 시기/일시 | 1737년 - 『형재선생시집』 간행[1737] |
소장처 | 계명대학교 동산 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신당동 1000-2] |
성격 | 고전적|고문헌 |
저자 | 이직(李稷) |
편자 | 이영진(李永蓁) |
간행자 | 이종탁(李鍾鐸) |
권책 | 4권 2책 |
행자 | 12행 20자 |
규격 | 33.2×22.0㎝ |
어미 | 상하내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 |
권수제 | 형재선생시집(亨齋先生詩集) |
판심제 | 형재집(亨齋集) |
[정의]
1618년 간행된 여말선초 성주 지역의 문인 이직의 시집.
[저자]
이직(李稷)[1362~1431]의 본관은 성주, 자는 우정(虞廷), 호는 형재(亨齋)이다. 이조년(李兆年)의 증손이다. 1377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순부주부(慶順府主簿)를 시작으로 밀직사 우부대언, 예문제락, 형조판서지신사(刑曹判書知申事) 등 고려에서 벼슬하다가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으며, 이후 도승지, 대사헌, 대제학 등을 거쳐 1405년 육조(六曹) 관제가 정해지자 처음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랐다. 1412년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으로 관직이 높아졌으며, 우의정(右議政)을 지냈으나 1413년 충녕 대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가 성주에 가두어지게 되었다. 1422년 풀려나 여러 벼슬을 거친 후 1424년 영의정에 올랐다. 초조동활자(初雕銅活字)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며 성주의 안산서원(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저자 사후 30여 년 뒤 저자의 손자 이영진(李永蓁)이 영천군수(靈川郡守)로 있으면서 김종직(金宗直)에게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보내 유고 전체를 편차하고 아울러 서문을 부탁하여 1465년(세조 11)에 『형재선생시집(亨齋先生詩集)』을 초간(初刊)하였으나 이는 현재 전하지 않으며, 초간 이후 4차례 중간(重刊)이 이루어졌다. 먼저 저자의 6세손 이욱(李稶)이 7세손 이흥인(李興仁)과 함께 초간본을 교정하여 1618년(광해군 10)에 원주 강원 감영에서 목판으로 중간(重刊)한 뒤 성주 안봉서원의 영당(影堂)에 이를 보관하였다. 그러나 초간본 안에 들어 있던 잡저와 연보는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후 1675년에 저자의 10세손 이성검(李誠儉)이 1675년(숙종1)에 옥구(沃溝)의 동헌에서 원본을 옮겨 적은 것이 있으며, 이후 1737년에 후손 이응협(李應協)이 중간본(重刊本)을 다시 보각(補刻)하여 인쇄한 보각후쇄본(補刻後刷本)이 있다. 그리고 1926년에 후손 이종탁(李鍾鐸)이 문경공 각 파의 족보를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판본을 수정하기도 하고 좀이 먹은 글자를 복원하여 활판으로 찍어내었다.
[형태/서지]
『형재선생시집』은 4권 2책의 활판본이다. 1면 12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크기는 33.2×22.0㎝이며, 상하내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이다. 권수제는 ‘형제선생시집(亨齋先生詩集)’, 판심제는 ‘형제집(亨齋集)’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김종직(金宗直)의 서문에 의하면 초간본에는 4권의 시집 외에 잡저 3편과 저자가 직접 쓴 연보가 있었다고 하나, 초간 이후 잡저와 연보는 유실되어 현전하지 않고, 현재는 서문과 발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로 이루어져 있다. 수록된 전체 시는 김종직이 편차하였으며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권1은 5언고시(五言古詩) 20수, 삼오칠언(三五七言) 1수, 7언고시(7言古詩) 16수, 권2에는 5언율시(五言律詩) 71수, 5언배율(五言排律) 4수, 습유(拾遺) 1편, 권3에는 7언율시(七言律詩) 64수, 7언배율(七言排律) 1수, 권4에는 7언절구(七言絶句) 115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시는 대체로 사대부 관료로서 세상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포부를 밝힌 것, 귀거래를 통해 자연친화적 삶을 동경한 것, 그리고 중국에서의 사행(使行) 또는 변새(邊塞)의 현장에서 쓴 것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말에는 중간본이 간행되기까지의 경위를 밝힌 저자의 6세손 이욱(李稶)의 발문과 1737년 중간본을 보각하여 후에 다시 인쇄할 때 쓴 이응협(李應協)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여말선초에 활동한 관료 문인 이직의 시문을 한데 수록해 두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 관료 문인들의 관각 문학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자가 여말선초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교유 인물군과 정치·사회 활동의 모습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 역시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