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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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巖先生文集 |
영어공식명칭 | Gaeam Teacher's Anthology |
이칭/별칭 | 『개암집(開巖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추제협 |
[정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29년에 후손 김여웅이 자료를 모아 간행한 성주 출신 학자 김우굉의 문집.
[저자]
김우굉(金宇宏)[1524~1590]은 자가 경부(敬夫)이고 호는 개암(開巖)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부친은 삼척부사를 지낸 김희삼(金希參)이며 김우옹(金宇顒)[1540~1603]의 형이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향시와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1566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예문관검열을 시작으로 병조좌랑, 대사간, 병조참의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특히 대사간으로 있을 때 사사로이 옥송(獄訟)을 결정하는 형조판서를 탄핵하는 등 강직한 성품을 가졌다. 그러다 1580년 유생 박제(朴濟)의 탄핵을 받아 외직으로 밀려나게 되며 급기야 1589년 관직에서 물러나 성주로 돌아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편찬/간행 경위]
『개암선생문집(開巖先生文集)』은 임진왜란 때 김우굉의 원고가 많이 소실되고 조카 경렴이 모은 시문만 약간 전했다. 여기에 5세손 김여용(金汝鎔)이 다른 이들의 문집에 실린 것을 합하여 1729년에 간행했다.
[형태/서지]
4권 2책의 목판본(木板本)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내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이다. 크기는 33.2×22.0㎝, 반곽의 크기는 22.2×16.5㎝이다. 1면 11행에 1행의 자수는 21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개암집(開巖集)’이다. 주석은 쌍행(雙行)이다. 장정법은 선장본(線裝本)이고, 지질은 저지(楮紙)[닥종이]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본 책은 한국국학진흥원 소장본이다.
[구성/내용]
『개암선생문집』은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는 이광정(李光庭)의 서문이 있다. 본문은 일반적인 문집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권1에는 시(詩)와 부(賦), 권2에는 소(疏), 차(箚), 계사(啓辭), 교서(敎書), 권3에는 서(書), 잡저(雜著), 발(跋), 제문(祭文), 묘문(墓文), 권4에는 부록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만사(挽詞), 제문(祭文), 봉안문(奉安文), 복향문(復享文), 남명사우록(南冥師友錄), 경산지(京山志) 등이 실려 있다. 이 중 편지 「상퇴계선생문목(上退溪先生問目)」, 「상퇴계선생서(上退溪先生書)」, 「문목(問目)」 등에는 이황(李滉), 노수신(盧守愼) 과 예학에 대해 문답한 내용이 있으며, 상소 「청참보우소(請斬普雨疏)」에는 척불론(斥佛論)을 바탕으로 보우(普雨)의 참형을 주장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잡저 「서행일기(西行日記)」에는 을사사화 이후 정치적 현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권말에는 1729년에 5세손 김여용이 쓴 발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많은 글이 소실되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학문적 성격과 사화 시대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