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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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洞稧序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미진 |
소장처 | 영남대학교 중앙 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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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이주(李𦁖) |
용도 | 동계(洞契) |
[정의]
조선 후기 이주가 작성한 성주 지역 일대에서 시행한 동계에 대한 서문.
[제작 발급 경위]
「성주동계서문(星州洞稧序文)」은 17세기 성주 일대에서 시행한 동계(洞契)에 대한 서문으로 이주(李𦁖)[1599~1669]가 작성한 것이다. 본 서문에 의하면, 본 동계는 한 고을에 사는 백성들이 근심과 기쁨을 함께 하면서 모든 길흉사를 공유하고자 조직된 것이라 하였다. 당시 성주 지역은 임진왜란 직후 상하 간 와해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고을 민간의 규약을 함께 준수하며 인간된 도리를 지킬 것을 강조하였던 바, 성주동계는 양반과 평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상하 합계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사주 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21.8x16.0㎝이다.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 이다.
[구성/내용]
「성주동계서문」에는 당시 성주 지역 내 동계를 결성한 목적과 운영 세칙 등이 기술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향약과 계의 시작점은 다르나 한 고을에 사는 지역민과 길흉사를 서로 돕고자 하는 의의는 동일하다는 점, 임진왜란 이후 상하 간의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이전에 제정된 규약을 잘 준수하면서 사람의 도리를 다 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등 동계의 설립 목적은 동족 간 또는 한 마을 간의 상부상조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영남 지역에서 향약의 실시가 어려웠던 것은 주로 변란과 흉년, 그리고 신분적 갈등에 의한 것으로, 그중 특히 임진왜란으로 발생한 인명과 재산의 막대한 손실로 거의 전국적으로 향약의 계속적인 실시가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임진왜란 이전에 실시되었던 상계(上契)와 하계(下契)를 신분 귀천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계(契)로 통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성주 지역 동계가 결성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주의 『학가재집(學稼齋集)』 권3에 해당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 성주 지역에서 시행한 동계가 임진왜란 이후 무너졌던 지역 사족 체계를 복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결성되었으며, 당시 성주 지역민의 상부상조의 정신과 신분 질서의 회복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려주는 값진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