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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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미진 |
[정의]
경상북도 성주 출신 인물의 문집 및 성주 지역에서 간행된 문집 일체.
[개설]
성주 지역에서 간행된, 혹은 성주 출신 인물의 문집 현황에 대해서 성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성주 문원(星州文苑)』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성주 지역 출신 인물 332명의 저작과 성주 관련 문헌 등 221종을 조사한 결과 총 226종의 문집류가 조사되었으며, 이를 판종별(版種別)로 분류하면 필사본을 제외하고 목판본 47건, 목활자본 49건, 석인본(石印本) 87건, 신식 활자본 7건, 영인본(影印本) 30건, 최근 간행물 6건으로, 근대 이전 간행된 문집류는 목판본과 목활자본이 대부분이며, 이후의 판종은 석인본이 다수를 차지한다. 간행 시기별로 분류하면 18세기 7건, 19세기 28건, 20세기 173건, 21세기 11건 등 184건이 20세기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성주 출신 인물의 문집]
성주 지역 출신 인물 가운데 최초로 간행된 문집은 바로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동안거사문집(動安居士文集)』이다. 저자의 아들 이연종(李衍宗)이 수집 및 편차한 뒤 1359년에 이색(李穡)의 서문을 붙인 뒤 경주부(慶州府)에서 1360년(고려 공민왕 9)에 간행되었다. 『동안거사문집』은 30여 종이 채 안 되는 고려 시대 인물의 문집 중 하나로, 이승휴의 일생과 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을 뿐 아니라 고려 고종과 충렬왕 시대의 상황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문집이다.
성주 출신 인물의 문집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것으로는 이숭인(李崇仁)[1349~1391]의 『도은선생문집』을 꼽을 수 있다. 총 10여 차례 이상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략적인 간행 개요를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406년(태종 6) 변계량(卞季良)이 유문의 차례를 잡은 뒤 권근(權近)의 서문을 받아 시집 3권, 문집 2권으로 목판본을 초간한 것, 이후 중종~명종 연간 시집 3권, 문집 2권 모두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 1589년경 최립(崔岦)이 진주목사로 재직하고 있을 시 자치통감강목자(資治通鑑綱目字)로 간행한 것. 효종~숙종 연간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 후손 이준길, 이도복 등이 1863년(철종 14) 부록을 덧붙여 간행한 것, 그리고 후손 이규형이 여러 자료를 모아 속집 2권을 붙여 7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또한 김우옹(金宇顒)[1540~1630]의 『동강선생문집(東岡先生文集)』은 모두 세 차례 이상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1661년(현종 2) 23권 9책[원집 17권 8책, 연보, 행장]을 목판본으로 초간, 1755년(영조 31) 23권 9책을 목판본으로 청천서원에서 간행하였으며, 1846년(헌종 12) 23권 9책을 목판본으로 간행, 그리고 1906년(고종 43) 원집 17권에 부(附) 4, 합 11책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1661년(현종 2)에 저자인 김우옹의 후손들과 문인들에 의해 목판본으로 간행된 것으로, 23권 9책[원집 17권 8책, 연보, 행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두에는 목록과 1682년 저자의 후학인 허목(許穆)이 쓴 서문, 그리고 권말에는 장현광(張顯光)이 1629년에 쓴 발문이 있다.
성주를 대표하는 유학자 한강 정구(鄭逑)[1543~1620]의 『한강선생문집(寒岡先生文集)』이 있다. 모두 세 차례 이상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1636년(인조 14) 12권 5책을 목판본으로 초간본 간행한 것, 1680년(숙종 6) 허목(許穆)의 주도로 원집 12권을 15권으로 재편하고 별집 3권, 속집 6권 등 총 10책을 목판본으로 회연서원에서 중간본 간행한 것, 1841년(헌종 7) 원집 15권, 별집 3권, 속집 9권 등 목판본으로 회연서원에서 간행한 것 등이다.
대유학자 한주 이진상(李震相)[1818~1886]의 『한주선생문집(寒洲先生文集)』이 있다. 『한주선생문집』은 목활자본과 목판본의 두 가지 판본으로 모두 두 차례 간행되었다. 초간본인 목활자본은 1895년(고종 32) 3월 거창군 정천(井泉)의 원천정(源泉亭)에서 간행된 을미자본(乙未字本)으로, 갑오농민전쟁의 혼란 속에서 아들 이승희와 제자인 허유(許愈)·김진호(金鎭祜)·이두훈(李斗勳) 등이 모여 49권 25책으로 편집, 교정하였다. 중간본인 목판본은 아들 이승희가 저자의 제자 곽종석(郭鍾錫)과 상의하여 문집의 권수를 43권 22책으로 줄이고, 초간본의 잘못된 부분을 산정(刪定)하고 정밀하게 다시 편집하여 이승희와 곽종석이 모두 죽은 뒤 인 1927년 성주의 삼봉서당(三峯書堂)에서 간행되었다.
이외에도 송희규(宋希奎)[1494~1558]의 『야계선생문집(倻溪先生文集)』, 이언영(李彦英)[1568~1639]의 『완정선생문집(浣亭先生文集)』, 박이장(朴而章)[1547~1622]의 『용담선생문집(龍潭先生文集)』, 김맹성(金孟性)의 『지지당선생시집 (止止堂先生詩集)』, 이직(李稷)[1362~1431]의 『형재선생시집(亨齋先生詩集)』 등이 있다.
[성주에서 간행된 문집]
성주 출신 인물은 아니지만 성주에서 간행된 주요 문집으로 『서계집(西溪集)』·『송당집(西溪集)』·『소재집(蘇齋集)』·『습재시집(習齋詩集)』 4종을 들 수 있다. 박세당(朴世堂)[1629~1703]의 『서계집』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조선 시대 성주목의 영역] 소재지에 있었던 사찰인 쌍계사(雙溪寺)에서 18세기 후반에 간행된 바 있다. 모두 20권 10책의 목판본으로 서(序)·발(跋)·부록 등이 없어 편찬의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조선 개국공신으로 영의정을 역임한 조준(趙浚)[1346~1405]의 『송당집』은 그의 9세손 조성(趙䃏)이 1669년(현종 10)에 간행하였으며, 모두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1515~1590]의 『소재집』은 성주목사로 재임한 조카 강복성(康復誠)이 1624년(인조 2)에 간행하였다. 모두 12권 7책의 목활자본이다. 선조 때 승문원 제조로 시문이 높은 경지에 올랐던 권벽(權擘)[1520~1593]의 『습재시집』은 성주목사로 재임한 증손 권집(權諿)이 1653년(효종 4)에 간행하였다. 모두 4권 1책의 목판본으로 책머리에 이정구(李廷龜)·최립(崔笠)의 서문이 있고, 끝에 권집의 발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