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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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百世閣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1길 21-3[고산리 542-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지아 |
건립 시기/일시 | 1552년 - 성주 백세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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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8월 4일 - 성주 백세각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백세각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1길 21-3[고산리 542-1]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맞배지붕집 |
정면 칸수 | 7칸 |
측면 칸수 | 7칸 |
관리자 | 송만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전통 가옥.
[개설]
성주 백세각(星州百世閣)은 성주 지역 출신인 조선 전기 문신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1494~1558]가 건립한 목조 건물이다. 송희규의 본관은 야로(冶爐), 자는 천장(天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병조좌랑(兵曹佐郞)과 현풍현감, 호조정랑(戶曹正郞) 등을 지냈다. 1547년(명종 2)에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로 왕의 외숙인 윤원형(尹元衡)과 영의정 이기(李芑)의 전횡(專橫)을 탄핵하다가 유배당하였다. 5년 동안 전라도 완주 지역에서 귀양살이를 하였고, 고향에 돌아와 성주 백세각을 지었다. 성주 백세각이 있는 마을의 원래 이름은 ‘고산(孤山)’이었는데, 송희규가 유배에서 돌아온 후 ‘고산(高山)’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위치]
성주 백세각은 성주군 초전면 고산1길 21-3[고산리 542-1번지] 고산 마을에 있다. 고산리 마을 회관에서 고산1길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나타난다.
[변천]
성주 백세각은 야계 송희규가 1551년(명종 6)에 짓기 시작하여 1552년(명종 7)에 완공하였다.
[형태]
정면 7칸, 측면 7칸의 규모의 ‘口’ 자형 맞배지붕집이다. 4단의 기단 위에 목조 건물이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다락방 형태로, 외부에 작은 사다리 모양의 3단 목조 계단과 30㎝~40㎝가량 높이의 목조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성주 백세각은 1982년 8월 4일에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현재 관리자는 송만수이다. 2019년부터 성주군 지원으로 문화재 지킴이 활동[문화재청·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 주최, 우리문화유산알림이 주관]이 전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성주 백세각은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도끼로만 깎고 다듬어 만든 건축물이라는 점과, 성주군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 또한 1919년 3.1 운동 당시 성주 장날에 배포할 태극기를 성주 백세각에서 제작, 보관하였으며, 경북유림단 파리 장서 사건의 모의 장소로 활용되어 독립운동과 관련이 깊은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