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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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甫月洞三層石塔 |
영어공식명칭 | Three Floors Stone Stupa at Bowol-dong |
이칭/별칭 | 보월동 삼층석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852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권기현 |
복원 시기/일시 | 1979년 12월 -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 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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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월 25일 -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852 |
원소재지 |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852 |
성격 | 석탑 |
양식 | 3층 석탑 |
재질 | 화강석 |
크기(높이) | 5.2m[높이]|4.4m[지대석 폭] |
소유자 | 경상북도 |
관리자 | 성주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개설]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星州甫月洞三層石塔)은 이름이 전하지 않는 통일 신라 시대의 사찰 터에 남아 있는 석탑의 흔적들을 수습하여 복원한 것이다. 사찰의 이름이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몽골 침입 때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화재로 전체가 소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건립 경위]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은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852번지 탑안 마을에 있다. 속칭 탑안[절골]이라 불리는 마을 북쪽 경작지 내에 있는데, 농지 가운데 여러 부재들이 흩어져 있다.
[형태]
통일 신라 시대 초기 양식의 3층 석탑이다. 기단(基壇)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일제 강점기에 무너져 땅속에 매몰되었던 것을 1979년 12월에 탑의 나머지 부분을 수습하여 완전 복원한 것이다. 탑의 기초 부분은 바닥돌 위로 상하 2층 기단을 높직하게 마련하였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렸는데 상륜부는 없어졌다. 화강석으로 만든 탑은 너비에 비해 탑신이 높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기단부에는 면석의 각 면에 돋을새김으로 웅대하게 형상화한 안기둥이 하나씩 있다. 이와 함께 5단 받침, 2단 괴임 형식의 지붕돌은 8세기 후반 통일 신라 시대 3층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높이는 5.2m이며, 지대석(址臺石) 한 변의 길이는 4.4m이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우주와 탱주(撐柱)의 기둥 모양을 새겼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다.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고,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새겨 있는데 1층 탑신이 2층에 비해 높게 조성되어 있다. 1층과 3층 옥개석의 처마석이 파손되어 원형을 잃었지만, 2층의 것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윗면의 경사는 비교적 느리게 흐르고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 있는 추녀 반전의 모습을 보인다. 상륜(相輪)은 전체가 사라지고 없다. 전체적으로 정제된 규격과 단조로운 꾸임 양식, 그리고 조각 기법 등으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은 3층 석탑으로, 높이는 5.2m며 지대석 한 변의 길이가 4.4m이다. 탑의 모습은 상륜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남아 있다. 옥개석이 1층과 3층은 일부 파손되었지만 2층은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전체 모양을 유추할 수 있다. 기단은 거의 보전되어 있다.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은 1979년 1월 25일에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은 2단 기단의 양식과 5단 옥개 받침 등의 양식으로 유추하면 8세기 후반 통일 신라 시대의 3층 석탑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당시 경주 지역에서 완성된 신라 석탑의 양식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하나의 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