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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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法田里寺址 |
영어공식명칭 | Temple Site of beopjeongri |
이칭/별칭 | 법전리 절터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권기현 |
소재지 | 법전리 사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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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 소장처 | 법전리 사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
성격 | 절터 |
소유자 | 성주군 |
관리자 | 성주군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개설]
시대와 사찰명이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지역 명칭을 따서 법전리 사지(法田里寺址)라고 명명하였다. 법전리 사지는 가야산(伽倻山) 상왕봉 8부 능선에 자리하며, 한국의 사지(寺址)에 등재되어 있다.
[변천]
법전리 사지는 창건과 폐사에 관한 기록이 전혀 전하지 않아 시대를 판정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사지로 등재는 되어 있지만 다른 절터처럼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로 법림사지 또는 미륵암지로 추정하기도 하나, 분명한 것은 발굴이 진행되지 않아 단언할 수 없다.
[위치]
법전리 사지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가야산 상왕봉 8부 능선에 자리해 접근이 매우 힘들다. 법전리 마을에서 등산길로 올라가면 마수 폭포가 나오고, 마수 폭포에서 임도를 따라 성주군 수륜면 봉양리 방향으로 약 2㎞ 정도 가면 우측에 가야산 정상으로 가는 비탐방로가 있다. 비탐방로를 따라 약 1시간 정도 더 올라가 상왕봉의 8부 능선에 도달하면 산길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예전 경작지 같은 지형과 평지 느낌의 산지가 펼쳐진다. 조금 더 올라가면 우측 경사면 주변 평탄한 지역에 석축(石築)이 나타나면서 절터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상당히 깊은 산중에 있어 방문하기도 쉽지 않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법전리 사지에 대한 구체적인 발굴 조사는 하지 않았고 지표 조사 정도로만 확인하였다. 조사 결과 절터는 2단~3단으로 추정되었고, 하단에서 특별한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석축이 남아 있는 상단에는 우물터와 깨져 부서진 석탑, 그리고 흩어진 석탑 파편이 있고, 그 뒤 금당 터로 보이는 자리에 불상을 올려놓는 대좌(臺座)로 추정되는 석조 유물이 있다. 전체적으로는 많은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구체적인 유구(遺構)로는 탑신석(塔身石)으로 판단되는 석탑이 있는데, 석탑 면석에 양 우주(隅柱)가 조각되어 있다. 하층 기단과 상층 기단의 갑석이 있는데, 하층 기단은 저석과 면석이 한 돌이며, 우주가 새겨 있고 탱주(撐柱)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상층 기단 갑석은 각형 2단 탑신 괴임을 상부에 조출하였고 부연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외에도 일부 면석들이 뒤집혀 흩어져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여러 개의 파편들로 흩어져 있는데, 4단 층급 닫침으로 되어 있으며 절수구는 생략되었고 풍탁 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부재들을 미루어 짐작하면 2층 기단의 통일 신라 시대 후기 3층 석탑으로 추정된다. 석탑 뒤편에는 석조물들이 있는데 금당 터의 축대 부재로 사용한 흔적을 보인다. 또 금당 터 중앙에 있는 큰 석물은 본존불상의 팔각 대좌로 추정된다.
[현황]
건물 터는 2단~3단으로 추정되며, 가장 넓은 평탄면은 대략 15㎡~25㎡ 정도의 면적이다. 축대는 자연 경사면에 2단~4단으로 쌓았다. 주변에는 기단 면석과 옥개석 편 2점, 탑신석 불상 대좌 등 다수의 사찰 관련 유물들이 흩어져 있으며, 왼쪽 경사면에는 샘터도 남아 있다. 또한 각종 기와 파편과 다수의 자기 조각들이 있다. 전체적으로 수습한 유물들로 보아 통일 신라 시대에서 근대까지 존속하였던 사찰의 터로 추정한다.
[의의와 평가]
지표 조사로 확인한 3층 석탑은 부재들의 양식과 절터 형태를 종합해 유추하면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법전리 사지는 통일 신라 시대 후기에 창건된 사찰로 비정된다. 하지만 아직 발굴을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법전리 사지에 대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