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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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希孟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of Gwon Huimaeng |
이칭/별칭 | 수암 권희맹 신도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산4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은정 |
건립 시기/일시 | 1564년 3월 - 권희맹 신도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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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75년 - 권희맹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25년 5월 15일 - 권희맹 사망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산41 |
성격 | 신도비 |
양식 | 입비 |
관련 인물 | 권희맹|홍섬|권응인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92㎝[높이]|7㎝[너비]|20㎝[두께]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희맹을 기리기 위해 1564년에 세운 비.
[건립 경위]
권희맹(權希孟)[1475~1525]은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으로 성품이 굳세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하였고 관직에 오른 후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쳐 후일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직무를 수행함에 막힘이 없고 능력이 탁월하여 관리자로서 유능하였다. 특히 나주목사로 재임 시 그의 학행과 품행을 따르는 후학들이 과거에 연달아 급제하여 명성이 높았다. 1524년 강원도관찰사로 재직 중에 객사가 전해지자 많은 후학들이 슬퍼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권희맹의 공적을 칭송하고 행적을 기리기 위해 1564년 3월 신도비가 건립되었다.
[위치]
권희맹 신도비는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산41번지에 위치한다. 성주군 선남면 문방2리 문포 마을 서편 산자락의 남쪽에 권희맹의 묘가 있고, 거기에서 남쪽으로 약 35m 떨어져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
비갓없이 비신과 비좌로 구성되어 있다. 상부가 여러 조각으로 깨져 파손된 것을 복원하였다. 비신의 상단은 귀접[모서리를 깎아 내어 둥글게 함]하여 제작한 규수(圭首)이다. 방형의 비좌는 측면에 난간을 새겨 4면으로 나누고 각 면마다 동일한 문양을 새겼다. 비신은 높이 192㎝, 너비 7㎝, 두께 20㎝이다.
[금석문]
전면 상단에 가로로 ‘관찰사권공신도비명(觀察使權公神道碑銘)’이라 새겨져 있으며 그 아래 세로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유명 조선국 통정대부 수 강원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권공의 신도비 명문 및 서문(有名朝鮮國通政大夫守江原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權公神道碑銘幷序)’이라 새겨져 있고 권희맹의 가계와 품성, 공직자로서의 그의 업적 등이 새겨져 있다. 조선 전기 문신이고 조광조의 문인인 홍섬(洪暹)[1504~1585]이 글을 짓고, 선무랑(宣務郞) 전한이학관(前漢吏學官) 권응인(權應仁)이 글씨를 썼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성주 출신 문인인 권희맹의 성품과 공적을 알 수 있는 실물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