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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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崇仁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of I Sungin |
이칭/별칭 | 도은 이숭인 신도비,문충공 도은 이 선생 신도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파1길 28-3[신파리 15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은정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 있는 고려 말 문신인 이숭인을 기리기 위해 1922년에 세운 비.
[개설]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본관은 성주이고,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다. 1368년(공민왕 17) 문과에 급제한 후 예의산랑(禮義散郞)·예문응교(藝文應敎)·문하사인(門下舍人) 등을 역임했다. 고려 문사(文士)를 뽑아 명나라로 보낼 때 1등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어려 가지 못했다 한다. 성균사성,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 등을 역임하였고 정몽주와 함께 실록을 편수하였다. 저서로는 『도은집(陶隱集)』이 있다.
[건립 경위]
이숭인 신도비(李崇仁神道碑)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며 학자였던 이숭인의 학행을 따르고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1922년 7월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위치]
이숭인 신도비는 수륜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숭인이 교향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후학 양성을 위해 세운 청휘당(晴暉堂)을 복원한 역사 문화 체험 관광지의 입구에 위치한다.
[형태]
이수와 비신, 귀부가 결합된 일반적인 구조의 신도비이다. 신도비 전체 높이는 310㎝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80㎝, 너비 74㎝, 두께 33㎝이다.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의 갈기가 튀어나오게 섬세하게 새겼고, 귀두는 귀갑문 안에 육각형을 음각하여 새겼다. 특히 이를 드러내고 눈과 코를 돌출시켜 귀두를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금석문]
비문은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원임 시강원 사서(原任侍講院司書) 김복한(金福漢)이 글을 짓고, 후학인 박의동(朴儀東)이 글씨와 전액을 썼다. 비문에는 이숭인의 생애와 문장가·유학자로서의 학행, 절의를 지킨 그의 생애가 잘 나타나 있다. 여러 차례 유배를 가고 조선 개국의 혼란기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숭인을 기리고 따르고자 한 후손들의 뜻이 잘 나타나 있다.
[현황]
2018년 이숭인 선생 숭모 사업의 일환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강학하던 청휘당을 중건하여 이를 토대로 역사 문화 교육의 체험장으로 재조성하였다. 이숭인 신도비는 청휘당의 입구인 관물루의 왼편에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누각인 관물루를 통과하면 정면의 청휘당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거경재, 왼쪽에는 명의재가 세워져 현재 한옥 펜션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숭인이 남긴 유물과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은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고려 시대 말 학자인 이숭인의 행적이 기록된 비석으로 지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